이재명 정부 출범 1년, 한국 영화계는 회복의 신호와 구조적 과제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왕과 사는 남자' '살목지' '군체' 등 흥행작이 나오고, '호프' '군체' '도라'가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한국 영화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했지만 산업 내부에서는 홀드백 논란과 제작 편수 감소, 영화진흥위원회를 향한 불신 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지난 1년간 정부의 영화 정책은 위기 대응과 지원 확대에 방점이 찍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침체된 영화산업 회복을 위해 656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중예산 영화 제작 지원과 독립예술영화 지원, 첨단기술 제작 지원 등을 통해 코로나19 이후 위축된 제작 현장에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극장 관객 회복을 위한 영화 관람 할인권 배포도 함께 추진됐다.
문체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13일부터 영화 관람 6000원 할인권 225만장을 배포했다. 추경으로 확보한 할인권 450만장 중 절반 규모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씨네큐 등 주요 멀티플렉스 누리집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할인권을 지급했고, 나머지 225만장은 여름 성수기인 7월 추가 배포할 예정이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이재명 정부 출범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영화산업의 일부 회복세를 언급했다. 최 장관은 극장 관객 수가 1분기 기준 2082만명에서 3190만명으로 늘었고 제작비 20억원 이상 영화 제작 편수도 지난해 26편에서 올해 40편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지표를 두고 "영화 위기 탈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올해 극장가에는 실제로 긍정적인 흐름이 있었다.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는 가족 관객과 팬덤 수요를 함께 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고, 공포영화 '살목지'는 손익분기점을 넘긴 뒤 장기 흥행 흐름을 만들었다. 연상호 감독의 '군체'는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뒤 국내에서도 빠른 속도로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한국 영화로는 4년 만에 칸 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정주리 감독의 '도라'도 감독주간에 초청됐다.
다만 개별 작품의 성과가 산업 전반의 회복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2억명을 넘겼던 전체 영화 관객 수는 이후 급감했고, 중간 규모 상업영화의 제작 위축도 계속됐다. 신인 감독과 배우의 등용문 역할을 해온 허리급 영화가 줄어들면서 제작 생태계가 경직되고 있다는 우려도 크다.
현장에서는 정부 지원의 방향과 집행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중예산 영화 지원 사업은 예산 확대에도 불구하고 제작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다. 영화나 드라마 제작은 수년에 걸쳐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정부 지원금은 해당 연도 안에 사용해야 하는 구조여서 선정 이후에도 추가 투자 확보에 실패하면 지원금을 반납해야 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장관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그는 앞서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영화·영상분과 회의에서 "정부 예산 스케줄에 따라 작품을 만들라고 하는 것은 선후가 바뀐 것"이라며 "현장에서 가장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제작 사이클에 따라서 예산이 지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단년도 지원사업을 실제 제작 주기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는 현장의 요구와 맞닿은 발언이다.
영화계 최대 현안은 홀드백이다. 홀드백은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한 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IPTV 등 후속 플랫폼으로 넘어가기까지의 유예기간을 뜻한다. 극장 상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과 후속 유통을 장기간 막을 경우 투자·배급사의 자금 회수가 어려워진다는 입장이 맞서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국회 일각에서는 극장 개봉 이후 일정 기간 OTT 공개를 제한해 극장 관람을 유도하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그러나 투자·배급사와 일부 영화단체는 6개월 법제화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극장 종영 이후 다음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길목이 장기간 막히면 자금 회수 기간이 길어지고, 제작·투자 구조가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 장관은 오늘 국민주권정부 출범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영화계 민관협의체가 22명 규모로 출범하며 8월 말까지 결론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그는 "서로 다 안다. 각 이슈에 대해서 어떤 입장인지 안다"며 "이제 필요한 것은 단계적 결론이든 근본적 결론이든 결론을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위기이고 어려운 때이고, 약간 훈풍이 분 것인지 영화산업이 정상화된 상태는 아니다"라며 "영화계에 참여하는 제작, 투자, 배급, 극장 모두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진정성에서는 중지를 모으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정부가 정책적·예산적 역할이 있다면 충분히 참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영화진흥위원회를 둘러싼 불신도 이재명 정부 1년 영화 정책의 과제로 남아 있다. 지난 4월 전주에서 열린 영진위와 영화인연대 간담회에서는 현장 영화인들의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영화인연대는 영진위의 현장 소통 부족, 현안 이해 부족, 지원사업 운영 방식, 영진위원 전문성 등을 지적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문체부 장관이 영화인들을 만나는 횟수와 비교하며 영진위원장이 현장 목소리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영화계의 불신은 단순한 소통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성평등센터 든든 정상화 문제, 영화관입장권 부과금, 예산 복원 과정에서도 영진위가 현장의 요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쌓여 있다. 영화인연대는 법률안 개정과 예산 확보 과정에서 현장 영화인들이 직접 국회를 설득하고 있다며 영진위가 정책 실행 주체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정부는 K컬처 산업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구상도 내놓고 있다. 최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K컬처 산업 규모를 재정의해 2030년 목표를 기존 300조원에서 400조원으로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K컬처 수출 목표 역시 기존 350억달러에서 1100억달러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설명했다. 영화산업 역시 이 같은 K컬처 확장 전략 안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다.
다만 영화계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산업 규모 확대가 아니라 제작과 투자, 배급, 극장, OTT가 함께 작동할 수 있는 유통 구조의 재정비다. 극장 관객 회복과 후속 플랫폼 수익, 제작비 회수 구조가 맞물려야 중예산 영화와 신작 개발이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 1년의 영화 정책은 위기 대응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추경 편성, 할인권 배포, 중예산 영화 지원 확대, 홀드백 민관협의체 추진은 모두 침체된 영화산업을 정책 의제로 끌어올린 조치였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예산 수혈 이후의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결국 2년 차 영화 정책의 관건은 협의체의 결론과 실행력이다. 홀드백 논의가 극장과 투자·배급사, 제작자, OTT 중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방식에 그친다면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변화한 관객 소비 패턴과 플랫폼 환경을 반영한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도출한다면 한국 영화 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최 장관은 "1년 차까지는 숨 가쁘게 뛰어오느라 많은 분들을 만나고 방향을 잡는 시간이었다"며 "2년 차는 실행이다. 정책적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실천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영화계 역시 이제는 지원 의지 확인을 넘어 구체적인 제도 개선과 실행을 기다리는 단계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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