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일. 진짜 선거 막판이다. 이 때가 되면 모든 정치인의 언어는 거칠어진다. 이길 것 같으면 상대를 짓누르려 하고, 불안하면 지지층을 자극한다. 목소리는 커지고 감정은 격해진다. 선거가 끝나갈수록 정치가 품격을 잃는 이유다.
그런데 투표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나온 오세훈 후보의 글은 조금 달랐다. 놀라울 만큼 낮았다. 그리고 놀라울 만큼 담담했다. 그 속에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서울시민의 고단한 삶을 먼저 이야기했고, 청년의 좌절을 이야기했다. "누가 책임이 있는지 따지기에 앞서 죄송하다"고 했다. 또 야당의 부족함까지 먼저 인정했다.
이 대목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언제 가장 낮아질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잃어갈 때일까. 아니다. 오히려 승기를 잡았을 때다. 흔들리지 않을 때, 굳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을 때, 상대를 몰아붙이지 않아도 된다고 느낄 때 비로소 사람의 본모습이 나온다.
이번 오세훈 후보의 유세 몇시간을 남겨 놓고 쓴 글이 유독 울림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지금 공포에 쫓기는 정치인의 언어를 쓰지 않았다. 증오를 자극하지도 않았다. 상대를 향한 독설도 없었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균형", "법치", "서울의 미래"를 말했다.
정치인의 언어라기보다, 마치 오래 시정을 맡아본 한 행정가가 시민 앞에서 마지막으로 마음을 꺼내놓는 듯한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오세훈은 늘 위기 속에서 정면돌파를 택해온 정치인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후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다시 돌아왔고, 서울시정의 중심에 섰다. 그 과정에서 한강 르네상스, 교통, 도시 디자인, 관광, 도시경쟁력 같은 거대한 도시 비전을 끊임없이 밀어왔다.
최근 논란이 있었던 정책들도 마찬가지다. 한강버스는 비판 속에서도 결국 시민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감사의정원 역시 조롱과 반대를 견디며 서울의 새로운 상징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는 늘 비판 속에서 결과로 답해온 정치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번 마지막 글은 절박함보다는 오히려 '담담한 자신감'이 읽혔다. 마치 긴 전쟁 끝에 높은 산 정상에 오른 사람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제 선택은 시민의 몫입니다. 저는 다시 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정치인이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은 승리를 확신할 때다. 교만해지고, 상대를 얕잡아보고, 시민 위에 서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번 글 속 오세훈은 달랐다. 오히려 더 낮아졌다. 서울을 "제 삶의 모든 것"이라고 말했고, 사실 오세훈은 늘 그래왔고, 그렇게 살아 왔음을 우리는 인정한다. 그는 또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물과 땀이 가슴속에 새겨져 있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는 선거 전략가의 문장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를 오래 사랑해온 한 사람의 마음이 읽혔다.
그래서일 것이다. 이 글이 단순한 선거 호소문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승부를 앞둔 정치인의 조급함이 아니라, 큰 싸움을 여러 번 치러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책임감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정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인지도 모르겠다. 이기는 사람일수록 더 낮아지는 것,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자신이 아니라 시민을 먼저 말하는 것이 말이다. 투표를 몇 시간 앞둔 지금, 오세훈의 글은 바로 그런 '큰 정치인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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