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지방소멸 시대, 관광객을 주민으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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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은 이제 통계 속 미래가 아니라 현실이 됐다. 젊은 층은 수도권으로 떠나고, 지역 학교는 문을 닫고, 상권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생활인구 확대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민등록상 인구만으로는 지역의 활력을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추진하는 디지털관광주민증은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한 정책이다. 인구감소지역을 찾는 관광객에게 '명예 주민'의 지위를 부여하고 숙박과 교통, 체험시설, 관광지 할인 혜택을 제공해 지역 방문을 유도하는 제도다. 문체부는 최근 참여 지역을 기존 44개에서 52개 지역으로 확대했다.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전국 89개 인구감소지역 가운데 절반이 넘는 지역이 참여하게 된 셈이다.

디지털관광주민증의 가장 큰 의미는 관광정책의 시선을 바꿨다는 점이다. 과거 관광정책이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유치했는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얼마나 자주 다시 찾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방문객이 아닌 생활인구를 늘리는 것이 정책 목표가 된 것이다.

생활인구는 지방소멸 대응의 새로운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많은 인구감소지역은 등록인구보다 훨씬 많은 체류인구가 오가며 지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주말 여행객, 워케이션 참가자, 농촌 체험객, 지역 축제 방문객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에 주소를 두지 않았더라도 지역에서 시간을 보내고 소비하는 사람 역시 지역 활력의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디지털관광주민증은 단순한 할인쿠폰 사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관광객을 소비자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관계를 맺는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다. 할인 혜택을 계기로 지역을 찾고, 지역 축제를 경험하고, 특산품을 구매하고, 다시 방문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면 지역 경제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관광객이 다시 찾을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할인은 방문의 계기가 될 수는 있어도 재방문의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지역마다 비슷한 축제와 비슷한 체험 프로그램을 반복한다면 관광객의 기억에 남기 어렵다. 완도의 해양치유, 순창의 발효문화, 울진의 생태관광처럼 지역만의 고유한 자원을 차별화된 콘텐츠로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통과 숙박, 관광안내 체계 등 기본적인 관광 인프라 개선도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 있어도 이동이 불편하고 머물 공간이 부족하면 체류시간은 늘어나지 않는다. 지역 관광의 경쟁력은 할인율이 아니라 체험의 질에서 나온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책 평가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앞으로는 가입자 수나 제휴시설 수보다 실제 방문 횟수, 재방문율, 체류일수, 지역 내 소비 증가 효과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그래야 디지털관광주민증이 단순한 이벤트성 사업이 아니라 지역경제를 살리는 정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지방소멸을 관광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일자리와 교육, 의료, 주거 등 더 근본적인 과제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관광은 지역을 처음 만나는 가장 현실적인 접점이다. 사람을 지역으로 이끌고, 관계를 맺게 하고, 다시 찾게 만드는 힘이 있다. 디지털관광주민증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면, 지방소멸 대응 정책의 의미 있는 실험으로 기록될 만하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주민증을 발급하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지역과 인연을 맺도록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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