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사물이 꿈틀거린다. 국제갤러리 기획전 '진동하는 사물들'에서는 사진 작가 9명의 생각과 감정, 기억이 정물에 스며들어 살아 숨 쉰다.
전시 참여 작가들은 각기 다른 사물과 이야기를 말하지만 작품들은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무수하게 거쳤을 고요한 순간, 이른바 스틸 모멘트(still moment)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귀하다. 카메라를 손에 쥐고 보냈을 고민의 시간이 배어 있다. 프롬프트 몇 줄로 뚝딱 생성한 인공지능(AI) 이미지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시선과 시간, 서사가 정물에 엉겨 붙었다. 정적에 휩싸인 사물들이 아주 낮은 주파수로 진동한다.
전시를 기획한 작가 구본창은 오랫동안 '스틸 라이프(still life·정물 사진)'에 천착한 작가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정물 작업을 꾸준히 해온 작가 가운데 20~30년간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이들을 우선 선정했어요. 타협하지 않고 힘들더라도 묵묵히 작업을 이어온 사람들을 눈여겨봤죠."
그 역시 오랫동안 사물의 낮은 소리를 나름대로 해석해 카메라에 담아왔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을 가리키며 구본창은 말했다. "사물에 스며든 역사와 손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감상하길 바라요."
카메라로 사물의 표정을 읽다
흔해 빠진 사물이 누군가에게는 보물이나 친구다. 작가 김경태에게는 황동 너트가 그렇다. 크고 작은 사물을 관찰하는 경험 자체에 주목해 온 그는 직경 8·11·14㎜인 아주 작은 너트들을 가까이에서 촬영해 거대하게 키웠다.
단 한 번의 촬영으로 뚝딱 얻어낸 결과물이 아니다. 사진을 수백 장 찍은 뒤 각 사진에서 초점이 가장 선명한 부분만 합성하는 '포커스 스태킹' 기법을 거쳤다. 그 덕분에 육안으로 너트 표면의 질감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이미지가 선명하다. 'Brass Hex Nut'(2016) 연작은 모두 똑같아 보이는 너트에도 저마다 다른 흔적이 있음을 보여준다.
김수강은 사물이 표정을 건넬 때 카메라를 든다. 돌멩이든 종이가방이든 상관 없다. 표정의 깊이를 담기 위해 19세기 사진 인화 기법인 '검프린트'를 사용한다. 이를 위해서는 맨손이 필수. 검프린트는 모든 과정에 손이 간다. 사물의 표정은 그의 삶과 맞닿아 있다. 김수강은 "가족이 죽거나 아이를 낳는 등 인생의 큰 사건들이 생겼을 때 사물의 표정이 아주 천천히 조금씩 변한다"고 말했다.
구성연은 사진을 통해 끈적한 욕망을 드러낸다. 시장에서 사 모은 칙칙한 장식품을 황금빛 설탕으로 정교하게 조각해 욕망의 형상으로 만들었다. 달콤하고 반짝이는 욕망은 결국 녹아 사라진다. 작가는 그 소멸 직전의 순간에 아름다움을 봤다. "슬슬 녹아 흐르며 없어지기 직전에 바로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한 그 순간을 찍었어요."
사물에 감정을…접신의 과정
시 번역이 취미인 정희승은 시 ‘주사위 던지기’에 담긴 우연과 필연 사이의 긴장을 사진 작업과 연계했고, 조성연은 팬데믹 시기 느꼈던 불안을 여러 구조물이 켜켜이 쌓인 불안한 균형을 통해 표현했다. 박찬우는 조선시대 책거리 형식을 차용해 수명이 다한 책을 중첩 촬영해 경험의 축적을 조명했다. 조선희는 어머니의 등을 촬영한 사진에 락스와 커피 등 물질을 더해 기억의 변화를 주름을 통해 표현했다.
정정호에게 사진 작업은 '접신'이다. 물때를 잘못 맞춰 바다 한가운데 갇혔던 순간, 그는 전쟁터에서 생을 마감한 할아버지의 허망한 죽음을 떠올렸다. 이후 그는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할아버지를 소환하기 위해 바닷가에서 수집한 오브제와 아버지의 군대 사진, 자신이 입었던 옷 등을 재구성하고 촬영했다.
그는 말했다. "정물 작업에 감정을 이입하는 과정이 마치 접신과도 같더군요. 할아버지가 제 안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어요."
전시는 7월 1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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