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진지하게 여기진 말아요=헤르만 헤세 지음, 배명자 옮김, 피카.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등을 쓴 헤르만 헤세의 국내 최초 공개 미발표 선집이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산문과 시, 에세이를 모았다. '고독의 대명사'로 알려진 헤세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글들이다.
헤세의 오랜 지인이었던 R.J. 흄은 그를 '늙은 어린아이이자 소년 같은 현자'라고 말했다. 또한 때로는 아버지 같고, 때로는 아들 같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책에는 흄이 기억한 헤세처럼 재치와 유머, 풍자가 넘치는 글들이 담겼다. 고독함에 가려져있던 인간 헤세의 생기가 드러난다.
‘헤르만 헤세 내면으로 가는 길' 시리즈의 첫 권인 이 책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시대의 폭력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헤세의 얼굴을 보여준다.
수록작 '작가와의 만남'에서는 상대가 기대하는 모습과 본모습 사이의 간극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헤세의 태도가 담겼다. 삶에 대한 여유와 소박함을 향한 사랑이 묻어난다. '문학적인 일상'에서는 전쟁 말기 삭막한 현실을 몇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특유의 유머로 견뎌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빈민구호시설의 노인들, 카사노바 등 다양한 인물을 통해 인간 본성을 날카롭게 포착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책 말미 '남들이 본 헤세'에서는 주변인들이 기억하는 헤세의 일화 등이 담겼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돌을 던지면 안 된다"는 꾸중을 듣고, "엄마, 다윗은 돌을 던지고도 사랑 받았잖아요?!"라고 말대꾸하는 장면에서는 장난기 많고 자유로운 그의 기질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진화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청년이 소년보다 낫고, 중년이 청년보다 나은 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진화하는 것이 맞다면, 노인은 중년보다 더 낫고, 마침내 '완성된 사람'이어야 맞고, 죽은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보다 나아야 합니다." (317쪽, 에두아르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 1908년 1월)
신경림 산문집-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하고=도종환 엮음, 창비.
시집 <농무>, <가난한 사랑 노래>, <낙타> 등을 남긴 고(故) 신경림 시인의 2주기를 맞아 출간된 유고 산문집이다. 광복과 6·25전쟁, 4·19혁명, 군사독재와 6월항쟁까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어낸 시인이 문학과 삶, 시대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았다.
시와 삶의 일치를 추구했던 시인의 문학적 고백이자, 평생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람들을 보듬으려 했던 그의 철학을 보여준다. 엮은이 도종환 시인은 "신경림 선생이 고뇌하며 걸어온 길이 곧 우리 문학이 고뇌하며 걸어온 길이며 그게 한국문학사의 뼈대를 이룬다”라며 "한국 현대시문학사에 대한 성찰이며 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정직한 발언이다"라고 썼다.
시인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구호에 머무는 문학을 경계한다. 그는 "자기 성찰이 없는 시가 아무리 옳은 소리만 골라 한다 해도 독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라고 단언하며, 역사의 아픔을 품으면서도 문학적 완성도를 놓치지 않으려 했던 자신의 시론을 들려준다.
등단작 <갈대> 이후 10년의 방황 끝에 <농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도 담겼다. 시인은 "나의 시는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영혼의 여행일 수밖에 없다"라고 고백하며, 끊임없는 자기 갱신의 과정을 돌아본다. 넉넉히 안아주는 강물의 이치를 깨닫는 등 자연과 일상에서 얻은 따뜻한 통찰로 교육, 환경, 통일 등 다채로운 사회 현안을 본다. 특히 남북 사이의 단절을 짚으며 “가장 낮은 자세가 되어 상대를 높이면서, 상대를 존중하면서” 문제를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자신의 부끄러움과 모자람을 드러내면서도 끝내 인간과 세상에 대한 다정한 믿음을 잃지 않았던 시인의 목소리는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 중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화되고 생태와 환경은 파괴되고 있으며, 민족과 국가의 통일은 아직도 불투명하고 전쟁의 위협도 상존해 있는 까닭입니다. 제 시는 아직도 이런 문제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있는 아름다운 것을 꺼내 시로 형상화하는 일과 이 일을 어떻게 조화시키는가에 저의 갈등과 고민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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