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사실상 종전 수순에 들어가고 있다. 군사적 긴장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양측 모두 전면전 확대보다는 출구를 찾는 데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국제유가 역시 최악의 시나리오가 피할 수 있다는 기대감 속에 다소 안정을 되찾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대결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진짜 이야기는 따로 있다. 전쟁보다 더 오래 남을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통로 가운데 하나다.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이곳을 통과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에서 생산된 원유와 천연가스가 이 좁은 바닷길을 지나 세계 시장으로 향한다. 대한민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국이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 대부분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이번 사태에서 이란은 미국의 군사력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란은 다른 무기를 갖고 있었다.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었다.
이번 사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국제유가는 즉각 반응했다. 환율과 금융시장도 흔들렸다. 세계 경제는 아직 실제 충격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비용을 지불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현대 경제가 가진 특징이다.
과거의 전쟁은 총과 탱크, 전투기로 치러졌다. 그러나 21세기 지정학은 공급망과 물류망, 에너지 통로를 통해 작동한다. 이제는 적국의 수도를 점령하지 않아도 된다. 세계 경제의 길목만 흔들어도 충분한 압박이 가능하다.
호르무즈 해협이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바닷길이 아니다. 에너지 안보와 경제 안보의 연결고리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과 철강을 수출하며 성장해 왔다. 그러나 동시에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원유와 가스 공급이 흔들리면 산업 전반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에너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앞으로 국가 경쟁력은 단순히 반도체를 얼마나 잘 만드는가에 달려 있지 않다.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가, 에너지 공급망을 얼마나 안전하게 확보하고 있는가도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결국 이번 중동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분명하다.
전쟁은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은 끝나지 않는다. 국제정세가 불안할 때마다 유가와 환율, 물가가 흔들리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미래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종종 반도체를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 자산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반도체 공장도 전기가 있어야 돌아가고, 전기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있어야 생산된다. 에너지 없는 AI도, 에너지 없는 첨단산업도 존재할 수 없다.
이번 전쟁은 끝나가고 있다. 그러나 세계 경제를 향한 호르무즈의 청구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진정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전쟁 이후다. 눈앞의 군사적 충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 안보와 공급망 안정성, 그리고 국가 경제의 회복력이다.
총성이 멈춘 뒤에도 경제는 계산서를 받아든다. 그리고 그 계산서의 제목은 여전히 ‘호르무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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