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미국은 쇠퇴할까? 반등할까?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아테네의 부상과 그로 인해 스파르타에 심어진 공포가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오늘날 미·중 패권 경쟁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론은 과연 역사가 반복될 것인가라는 서늘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지난 5월 북경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중이 전략적 안정을 이루어 투키디데스 함정을 회피해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간 전쟁이 끝난 현 시점에서 협상결과를 받아본 미국인들 마음속에는 미국의 쇠락으로 인한 공포심과 분노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동시에 이를 바라보는 미국의 동맹국들도 착잡한 심경이다. 다만 우리가 목도하는 미,중간 전략적 경쟁의 현실은 고전적인 함정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비정형적이니 잘 살펴보아야 한다.
 
최근 국내에서는 미국의 패권이 지속될 것인지 아니면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이 밀려날 것인지에 관한 관심이 점증하면서 상반된 전망이 분출하고 있다. 두 나라 간 전략적 경쟁이 우리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우리는 이에 대해 냉철한 시각을 갖는 것이 생존에 절대적으로 긴요하다.

미국 패권, 즉 팍스 아메리카(Pax Americana)에 대한 전망과 평가는 두 갈래로 나뉜다. 미국 패권의 쇠퇴론을 믿는 자들은 미국의 전 세계적 과잉 팽창으로 인한 미국의 국력 소모가 그간 너무 컸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세계 실질 총생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어 이제는 20%가 채 안 되는 수준이라는 점도 패권국 경제로는 부실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무엇보다 미국의 제조업 기반이 붕괴하여 미국의 연간 군함건조 능력은 중국의 1/100 수준도 안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미국 해군 정보국(ONI)에 따르면 중국의 조선능력은 미국의 230배나 된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미국의 감당할 수 없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는 트럼프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덩이처럼 더욱 불어나고 있다. 또한 미국 사회의 양극화로 인한 사회결속력이 약화되고, 내부 적대감이 증대되는 것은 미국이 로마처럼 내부로부터 붕괴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뒷받침한다.
 
반면 미국 패권 지속론자들은 미국의 패권이 유지될 것으로 보는 다른 근거들을 제시한다. 우선 다른 어떤 통화도 대체할 수 없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힘이 당분간 미국 패권을 떠받쳐 줄 것이라고 본다. 중국을 위시한 브릭스(BRICs) 국가들이 국제 결제수단으로서 달러를 대체하기 위한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들이 달러를 밀어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AI, 양자 컴퓨터등 첨단 기술분야에서 미국의 기술혁신 역량이 뛰어나다는 점도 미국의 강점으로 꼽는다, 이 분야에서 혁신을 이끄는 나라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것이고 그 나라가 패권을 잡을 것이라는 논리는 이전 산업혁명 역사를 보면 타당하다. 그리고 전 세계를 잇는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가 탄탄하고 미국의 ‘시스템적 회복력’이 여전히 압도적이라는 이유로 쇠퇴론을 반박한다. 하지만 이들도 인정하는 것은, 냉전 직후 단극 질서 속에서 미국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던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는 점이다.
 
미.중 전략적 경쟁은 현재 진행형이고 따라서 현시점에서 단정적인 전망을 할 수는 없다. 이 경쟁은 앞으로 몇십 년 더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장기 경쟁의 추세가 어느 나라에 유리하게 흘러가는지는 짚어보아야 한다. 이 흐름을 진맥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저점은 미국의 의지, 대만의 안보와 첨단기술 분야 경쟁이다.
 
미국의 의지 측면과 관련하여 이번 북경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를 따져 보아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세계전략은 1기와 또 다르게 미국의 패권적 우세를 지킬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은 중국이 요구한 ‘전략적 안정’을 받아들임으로써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봉쇄’에서 ‘거래’로 전환됐다고 보아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미국이 대만을 중국 봉쇄를 위한 전략적 요충이 아니라 중국과의 무역 및 경제적 합의를 위한 ‘협상 칩(수단)’으로 격하시켰다는 사실이다. 이는 미국이 더 이상 패권국으로서 책임을 감당하기보다, 자국의 실익을 극대화하는 ‘실용적 G2 관리 체제’로 노선을 변경했음을 의미한다. 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에 이미 팔기로 약속한 140억 불 상당의 무기판매를 유보시킨다고 했다. 잘못 시작한 이란전을 끝내기 위해 미국은 중국의 도움이 필요했고 중국이 이란에 무기를 더 제공하지 않는 조건으로 미국이 대만에 대한 무기수출 결정을 유보하도록 압박했을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면 동맹국 사이에 미국의 신뢰는 급격히 추락할 것이고 미국의 패권쇠퇴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이란과 종전을 위해 미국이 합의한 MOU 문안을 보면 미국은 패권국으로서 공해자유의 원칙을 지켜낼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60일간 추가협상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만약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를 어떤 형태로든 받도록 허용한다면 세계 외교의 참사가 될 것이다. 미국은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켜 전대미문의 해협 통행료라는 권리를 이란에 허용함으로써 패권국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셈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대만 문제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중국의 ‘회색지대 전술’은 물리적 충돌 없이도 대만을 서서히 고립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때 미국이 거래적 태도를 고수하면서 소극적 대응을 하여 대만이 중국의 세력권내로 편입된다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체제는 균열을 넘어 붕괴할 수도 있다. 마치 이번 이란전으로 인해 중동에서 안보질서가 재편되는 모습이 아시아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그 결과 미 해군은 제2도련선까지 물러나야 할 것이고 그러면 미국의 쇠퇴는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미.중간 경쟁의 최전선은 이제 AI와 양자 컴퓨팅이라는 4차 산업혁명의 심장부에서 진행 중이다. 미국은 반도체법과 같은 국가적 지원과 천문학적 투자를 통해 기술적 우위를 점하려 하지만, 시장에서는 벌써 ‘거품론’이 고개를 든다. “삽을 파는 기업만 돈을 벌고, 금을 캐려는 기업은 아직 수익을 못 낸다”는 비판은 AI 투자 시장 과열 위험성을 말하고 있다. 만약 이 기술 거품이 꺼진다면, 그 경제적 충격은 2008년 금융위기처럼 미국 패권에 대한 타격으로 이어질 것이다. 대만과 AI 두 문제만 놓고 보아도 내년이 미.중간 경쟁의 결정적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AI 투자의 성패가 내년쯤 윤곽이 드러날 것이고 대만 문제도 중국 처지에서는 내년이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과 시 주석 4 연임이 결정되는 해이기에 볼만한 업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지금 올 2월 다보스 포럼에서 캐나다 카니 총리가 말한 ‘대단절(Great Rupture)’ 또는 최근 회자되는 ‘관리된 무질서(Managed Disorder)’라는 전대미문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일방적 질서는 사라지고, 양강이 서로의 힘을 저울질하며 끊임없이 타협과 견제를 반복하는 불안정한 균형이 지속될 것이고 내년에 불확실성은 더 증폭될 것이다.
 
이 거대한 전략적 변환기에 한국은 맹목적인 안미경중(安美經中)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이 언제든 안보 공약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패권국들의 거래 속에서 우리의 생존이 협상 카드로 소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주적 국방, 기술적 자립과 안보협력의 다변화라는 실용적 생존 전략을 다시 짜야 할 때다. 역사는 구조적 조건의 압력이 높더라도 지도자와 국가의 현명한 선택이 생존에 중요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얇은 얼음 위를 지칠 때는 빨리 나가는 게 더 안전하다. ‘머뭇거리면 빠진다’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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