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2026년도 반년이 지났다. AI(인공지능)가 세상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대전환 시대에 올해도 한치 앞을 보기 힘들 만큼 세상이 급변하며 더욱 불확실하고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 대전환 시대에는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세계적 선도 기업들이 최근 앞다투어 인류의 목적 및 미션에 집중하는 ‘업의 재정의’에 몰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기술이나 제품 중심으로 업을 정의해왔으나 대전환 시대를 맞이하며 인류의 난제 해결, 인류의 지속가능성 및 비전 실현, 인류 행복 및 공영 등 목적 및 미션 중심으로 기본에 충실한 ‘업의 재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인류의 기본적 목적 및 미션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서 AI 대전환이 인류의 지적·물리적 역량을 증강 및 확장시키며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세계 패권과 경제 판도를 놓고 AI 대전환을 중심으로 국가 간 경쟁이 더욱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그 기본인 국가경쟁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6월 18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6년 국가경쟁력 평가는 우리 정부와 기업의 정책 및 전략에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인용되고 있는 IMD의 국가경쟁력 평가는 GDP(국내총생산) 등 경제규모가 아니라, 경제의 핵심인 기업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창출할 수 있는 국가 환경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지표다. IMD는 국가경쟁력을 GDP나 생산성만으로 볼 수 없고, 정치·사회·문화·제도·인프라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평가는 ‘경제성과’, ‘정부효율성’, ‘기업효율성’, ‘인프라’ 등 4대 분야를 중심으로 70개 국가 경제를 비교했다. 통계자료뿐 아니라 기업인 설문을 반영하기 때문에, 실제 경제지표와 함께 기업 현장이 체감하는 규제, 노동시장, 제도 신뢰, 경영환경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IMD 국가경쟁력 지표의 신뢰성 및 일관성에 대한 논란이 있으나 그것은 이를 모든 면을 망라하는 완벽한 성적표로 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국가 경제의 핵심인 기업 입장에서 국가를 ‘기업 활동 플랫폼’으로 보고 그 플랫폼이 기업의 경쟁력 창출에 얼마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지에 대한 평가 지표라 이해하면 중요성과 활용 가치가 매우 높아질 것이다.
2026년 종합 1위는 싱가포르가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홍콩, 스위스, 대만, UAE, 덴마크, 아일랜드, 네덜란드, 스웨덴, 미국이 상위 10위권에 자리했다. 싱가포르는 2019년, 2020년 연속 1위를 기록한 후 3위권으로 떨어졌으나 2024년 1위로 복귀하고 작년 2위를 거쳐 올해 다시 1위를 차지하는 등 최근 세계 최고의 국가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비록 인구 600여만 명의 도시국가로서 우리와 직접적 비교는 어렵지만 싱가포르의 국가경쟁력 제고 전략은 대표적 성공 모델로 세계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어 우리도 면밀히 분석하고 참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IMD는 2026년 평가에서 국가경쟁력의 핵심이 과거의 규모·산출·비용·성장률 중심에서 제도적 안정성, 정책 예측가능성, 기업의 민첩성, 인재와 기술 기반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 정책에 많이 반영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올해 나타난 ‘기업효율성’의 회복 추세는 매우 고무적이다. ‘기업효율성’은 2025년 44위에서 2026년 34위로 10계단 수직 상승했다. 생산성·효율성, 노동시장, 금융, 경영관행, 태도와 가치관 등 5개 세부 부문이 모두 개선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이는 전년 국내 정치적 상황에 따라 크게 악화됐던 기업 활동 여건이 일부 회복됐고, 기업의 생산성, 금융 접근성, 경영 대응력, 사회적 기업가정신에 대한 평가가 나아졌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한국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축적한 제조 역량, 품질 관리, 빠른 실행력, 디지털 전환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요소가 국가경쟁력 회복에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기업 효율성’ 지표에서 아직 중위권인 34위에 머무르고 있어 이를 조속히 최소 20위권, 더 나아가 10위권으로 향상시키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특히 노동시장과 경영관행은 구조적 약점으로 남아 있다. 노동시장 경직성, 직무·성과 중심 인사체계의 미흡, 노사관계의 불확실성, 고급 AI·디지털 인재 부족, 기업의 빠른 사업 전환을 어렵게 하는 제도적 제약 등은 속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아울러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인 이른바 30-50클럽 국가 중에서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IMD 평가 상위권에는 싱가포르, 홍콩, 스위스, 덴마크처럼 인구가 작거나 도시국가·강소국 성격이 강한 나라가 많다. 반면 한국은 많은 인구, 높은 제조업 비중, 큰 대외의존도, 지정학적 리스크를 가진 국가로서 이런 조건 속에서도 21위를 기록했다는 것은 한국이 규모와 복잡성을 가진 선진경제 가운데서도 상당히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30-50클럽은 아니나 세계 시장에서 첨예한 경쟁을 하고 있는 중국이 우리보다 9계단 앞선 올해 12위에 포진하고 지난 10여 년간 20위권 밖에서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면 ‘경제성과’는 2026년 14위로 2025년 11위 대비 다소 하락했고, ‘정부효율성’은 2026년 31위로 작년과 같은 순위에 머물렀다. ‘정부 효율성’의 부진 및 정체는 한국의 가장 큰 약점이다. 조세정책, 제도여건, 사회여건 등 일부 부문은 개선됐지만, 재정과 기업여건 부문은 여전히 약점으로 지적된다. 이는 기업이 체감하는 규제, 행정절차, 법제 환경, 정책의 예측가능성이 아직 충분히 경쟁력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의미다. IMD 평가는 기업인 설문을 반영하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 규제 부담, 정치·제도적 안정성은 순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경제성과’의 둔화도 약점이 되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과는 전년보다 3계단 하락했다. 국제 무역·투자에서는 일부 개선이 있었지만 국내경제, 고용, 물가 부문이 약화되면서 전체 평가가 낮아졌다. 이는 한국 경제가 수출과 첨단 제조업에서는 강점을 갖고 있지만 내수 활력, 고용의 질, 물가 안정, 성장 잠재력 측면에서는 부담을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성장, 인구구조 변화, 가계부채, 산업 전환 과정에서의 고용 미스매치 등은 앞으로도 경제성과를 제약할 수 있는 요인이어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IMD 국가경쟁력 평가가 주는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제 국가경쟁력은 경제 규모보다 기업이 혁신하고 투자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제도와 환경을 얼마나 잘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10위권 국가경쟁력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내 기업은 물론 글로벌 기업이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혁신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결국 한국의 과제는 기존의 제조업·ICT·과학기술 강점 위에, 규제 합리화, 노동시장 유연성, 정책 신뢰, 인재 및 인프라 시스템을 결합해 국가경쟁력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기업, 정부는 물론 사회 전반의 AI 대전환은 기본이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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