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가 한창이다. 영어에도 복날을 뜻하는 표현이 있다. 'Dog Days'. 처음 들으면 “왜 복날이 개의 날이냐”고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하지만 이 말 속에는 고대 로마인들이 여름철 큰개자리의 시리우스가 떠오르는 시기를 가장 무더운 계절로 여겼던 역사와 천문학이 숨어 있다. 익숙하게 쓰던 영어 한마디에도 수백, 수천 년의 문화와 문명이 녹아 있는 셈이다.
미국 변호사 이철재(61)가 최근 펴낸 《영어 한 문장으로 여는 세상》은 바로 이런 영어의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미국 변호사가 영어책을 냈다고 하면 흔히 법률 영어를 쉽게 설명하거나 실용 회화를 다룬 책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문법이나 회화보다 역사와 문화, 문학과 예술을 이야기하는 인문교양서에 가깝다. 미국 유학시절과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체득한 언어 경험에 클래식 음악과 세계 문화를 오랫동안 탐구해 온 저자의 시선이 더해져 영어 단어 하나에서도 문명의 흔적을 읽어낸다.
이 변호사의 삶 자체도 책만큼이나 다채롭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주 샘휴스턴주립대학교와 뉴욕 포덤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고, 미국 대학농구의 명문으로 잘 알려진 시러큐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학박사(JD) 학위를 받았다. 이후 뉴욕주와 워싱턴DC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 국제 법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국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법률은 그의 삶의 한 축일 뿐이다.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을 공부한 그는 음악 기획자로 활동하며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국내 공연을 유치하기도 했다. 클래식은 물론 1970~80년대 대중가요와 문화예술 전반에도 조예가 깊어 관련 칼럼을 꾸준히 써 왔으며,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 《뉴욕 오디세이》, 《노래에 새긴 끝없는 이야기》 등 음악과 도시, 대중문화를 소재로 한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이번에는 그 관심의 폭을 영어로 넓혔다.
책은 우리가 매일 접하는 영어 단어와 표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블루투스(Bluetooth)는 10세기 덴마크의 왕 하랄드 블로탄드(Harald Bluetooth)의 별명에서 유래했고, 야후(Yahoo)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인간의 탐욕을 상징하는 존재의 이름이다. 드론(Drone), 피싱(Phishing), 와이파이(Wi-Fi) 같은 현대 기술 용어 역시 저마다 흥미로운 탄생 배경을 품고 있다.
저자는 단순히 어원을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영어 단어 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북유럽의 역사와 영국 문화, 성경과 고대 영어, 셰익스피어와 세계 문학, 미국 사회와 IT 산업의 발전 과정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이 곧 세계사를 읽고 문화를 이해하는 여정이 되는 셈이다.
미국 생활에서 직접 체득한 살아 있는 영어 이야기도 책의 매력이다. 미국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할 때는 '핸드드립'보다 '푸어오버(Pour-over)'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일상적인 사례부터 추수감사절과 블랙프라이데이, 크리스마스와 세인트패트릭스데이까지 영어권 문화의 배경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언어를 그 사회의 생활양식과 함께 이해해야 진짜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문법 공식이나 암기식 학습법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역사와 종교, 문학과 예술, 스포츠와 음악이 어우러지며 영어는 하나의 인문학이 된다. 영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은 물론 오랫동안 영어를 공부해 온 독자에게도 새로운 시각을 선사한다.
이 변호사는 "영어 단어 하나에도 천 년의 역사와 한 편의 문명이 담겨 있다"며 "영어를 알면 세상이 보이고, 세상을 알면 영어가 더욱 재미있어진다"고 말한다.
《영어 한 문장으로 여는 세상》은 영어를 가르치는 책이라기보다 영어를 통해 세상을 읽는 책이다. 익숙한 단어 속에 숨어 있던 뜻밖의 역사와 문화를 발견하는 순간, 영어는 더 이상 시험 과목이 아니라 인문학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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