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목은 실적 호재도, 대규모 수주도, 신사업 발표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몰리며 순식간에 '애국테마주'의 중심에 섰습니다.
주주 커뮤니티에는 "국민기업을 살리자", "300억원만 넘기면 된다", "상장폐지시키면 안 된다"는 글이 잇따랐습니다. 상장폐지 우려에 놓인 기업을 투자자들이 직접 지켜내자는 이른바 '응원 매수'가 확산한 것입니다.
상장폐지 제도 강화가 예상치 못한 투자 트렌드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부실기업 솎아내려 했더니… 벼랑 끝에서 피어난 '애국 테마'
이번 현상의 출발점은 금융당국의 상장폐지 제도 개편입니다.이달부터 코스피 상장유지 시가총액 기준은 기존 2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상향됐습니다. 여기에 30거래일 연속 기준 시가총액을 밑돌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이후 90거래일 가운데 45거래일 이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즉시 상장폐지 되는 등 요건이 한층 엄격해졌습니다. 내년 1월에는 시가총액 기준이 500억원으로 재차 높아질 예정입니다.
금융당국이 상장폐지 제도를 손질한 목적은 시장 신뢰 회복에 있습니다. 부실기업이 장기간 남아 투자자 피해를 반복하면서 상장사 수는 많지만 시장의 질은 떨어지는 악순환을 끊고, 경쟁력을 잃은 상장사를 신속히 퇴출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시가총액이 200억원대에 머물던 기업에는 상장폐지 경고등이 커졌습니다. 그런데 시장은 정책의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한성기업은 25년간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위한 '영웅을 위한 음악회'를 후원한 기업이라는 점이 재조명됐고, 모나미는 광복절 캠페인, 독립유공자 후원, '153 독도' 제품 수익금 기부 등 사회공헌 활동이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당시 일본산 필기구를 대체하는 대표 국산 브랜드로 부각됐던 기억도 다시 소환됐습니다.
'애국'이라는 스토리와 상장폐지 우려가 더해지며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세가 폭발했습니다.
"300억원만 넘기면 된다" 회사보다 바빴던 주주들
이번 사례가 이례적인 이유는 기업이 아닌 투자자들이 먼저 움직였다는 점입니다.상장유지 기준 강화 이후 일부 상장사들은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하거나 액면병합을 통해 저가주 이미지를 개선하고 기업가치 제고에 나서고 있습니다. 실적 개선과 신사업 추진, 비핵심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시가총액을 높이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상장유지를 위해 회사가 직접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은 이번 제도 개선의 목적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모나미와 한성기업에서는 이러한 자구책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주가를 끌어올린 것은 회사의 자본정책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선택이었습니다. 실제로 모나미 시가총액은 한때 700억원을 웃돌았고, 한성기업도 900억원을 넘어섰습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했더니, 정작 투자자들은 상장 유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을 사들이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된 것입니다.
반짝 상승 뒤 찾아온 급락…기업가치 숙제로
다만 테마의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모나미는 20일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되며 하루 동안 매매거래가 정지됐습니다. 거래 재개 이후인 21일 29.89%, 22일 20.08% 급락한 데 이어 23일에도 5.41% 하락하며 1977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시가총액 역시 한때 700억원을 웃돌았다가 이날 종가 기준 370억원 수준으로 내려왔습니다.
한성기업도 16일 하루 매매거래가 정지된 뒤 거래가 재개된 20일 하한가를 기록했고, 21일에도 15.44% 하락하는 등 4거래일 연속 약세를 이어갔습니다. 시가총액도 900억원을 넘겼다가 23일 종가 기준 510억원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그 사이 시장에서는 또 다른 '애국테마주'를 찾으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손오공을 비롯해 모나리자, 비비안, PN풍년, 좋은사람들 등 국산 브랜드와 장수 기업들이 거론되며 상한가를 기록하거나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되고 있습니다. 제도 변화가 새로운 테마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전문가들은 브랜드 이미지와 테마만으로 형성된 주가 상승은 지속 가능성이 낮다고 경고합니다. '애국테마주'가 일시적으로 시가총액을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진짜 상장유지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실적과 재무건전성, 펀더멘털의 개선이기 때문입니다.
응원 매수가 기업에 잠깐의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어도 체질을 바꿀 경쟁력까지 대신 만들어주지는 못한다는 뜻이지요. 상장폐지 제도의 빈틈을 임시로 메운 것은 투자자들이었지만, 그 빈틈을 지속 가능한 가치로 만드는 것은 결국 기업 자신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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