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탐사기획] 세입자 보증금 빼돌려 '전기차 충전소' 차렸다…협회 별관 임차 업체의 민낯

  • 건설기술인협회 별관 임대한 소버린…전세보증금 일부 개인 계좌·계열사로 유용

  • 인천 송도 대형 충전소 철거 수순…수백억 부채에 파산 선고, 세입자 구제는 난망

[편집자주]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합니다. 아주경제 탐사보도팀 '발품'은 20~30대 기자들이 현장으로 들어가 사람을 만나고 목소리를 기록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경제·산업·정치·사회·부동산·문화를 가리지 않고, 삶과 맞닿은 모든 현장을 추적합니다. 문제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고 끝까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발품'은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내고,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끝까지 전하기 위해 한 번 더 확인하고 집요하게 묻겠습니다. 독자가 미처 닿지 못한 곳까지 대신 걸어가겠습니다.
지난달 24일 찾은 인천 송도 리치센트럴 빌딩 주차장 4층의 모습 전기차 충전소 개소식 때 사용된 플래카드가 접힌 채 방치돼있다 사진박승호 기자
지난달 24일 찾은 인천 송도 리치센트럴 빌딩 주차장 4층의 모습. 전기차 충전소 개소식 때 사용된 플래카드가 접힌 채 방치돼있다. [사진=박승호 기자]
설립 두 달 차 신생 법인 소버린스테이트는 불투명한 절차로 한국건설기술인협회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 100억 원을 편취한 뒤 이 돈으로 또 다른 사업을 벌이다 보증금을 소진했다.

지난달 24일 찾은 인천 송도 리치센트럴 빌딩 주차장에는 전기차 충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소버린이피에스가 국내 최대 규모라고 홍보했던 전기차 충전소 '메가와티'가 있던 자리다. 급속충전기를 포함해 총 60대에 달했던 충전 시설이 모두 철거된 주차장 한쪽에 남아있는 건 구겨진 개소식 플래카드 한 장뿐이었다. 주차장 한켠에서는 전기 설비 철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소버린스테이트의 대표 최모씨는 소버린이피에스 대표이기도 했다. 2022년 10월 그는 이 장소에서 메가와티 개소식을 열고 "전국 주요 거점에 대형 충전소 네트워크를 확대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소버린스테이트와 소버린이피에스는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한 몸이었다. 두 법인의 등기부등본 기록에는 대표이사 최씨와 감사 이모씨가 공통적으로 기재돼 있다. 소버린스테이트 이사 직함으로 세입자들과 계약을 전담한 것으로 알려진 유모씨는 실은 소버린이피에스의 등기이사였다. 그는 최씨에게 9500만원을 빌려주고 소버린이피에스 지분 3%를 넘겨받기도 했다. 
주차장 4층 한켠에서는 전기 설비 철거가 진행 중이었다 기둥 뒤로 멀리 메가와티 전기차 충전소 마크가 보인다 사진박승호 기자
주차장 4층 한켠에서는 전기 설비 철거가 진행 중이었다. 기둥 뒤로 멀리 '메가와티' 전기차 충전소 마크가 보인다. [사진=박승호 기자]

세입자들로부터 소버린스테이트 계좌로 입금된 전세보증금 약 100억원 중 상당액은 최씨 개인 계좌를 경유하거나 소버린이피에스 계좌로 직접 이체된 것으로 확인됐다. 빠져나간 보증금은 송도 부동산 매입 등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소버린이피에스는 2022년 여름 리치센트럴 빌딩 내 주차장과 세차장을 총 36억8917만원에 매입했다. 소유권 이전 등기가 완료된 당일, 해당 부동산 전체에는 채권최고액 27억6000만원짜리 공동담보 근저당권이 설정됐는데, 채무자는 법인이 아니라 최씨 개인이었다. 

소버린이피에스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동안 법인의 빚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법인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당시 법인의 총부채만 300억원을 넘어선 상태였다"며 "세입자 보증금과 외부 투자금으로 빚을 돌려막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협회에 매달 최대 9500만원의 임대료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이 구조는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2023년 4월부터 협회에 내야할 임대료가 밀리기 시작했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최씨는 이미 그 무렵 자금 유동성이 바닥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소버린스테이트를 통해 신규 세입자들과 전대차 계약을 이어가며 보증금을 계속 받아 챙겼다. 

연체가 다섯 달째로 접어든 2023년 9월 21일, 협회는 소버린스테이트에 계약 해지 내용증명을 발송했고 다음 날 입주민들에게도 퇴거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후 최씨는 수사기관과 채권자들에게 "송도 자산을 매각하면 보증금을 전액 상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친인척 측의 주차장 가압류 등 채권채무 갈등으로 매각 추진이 최종 결렬돼 그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소버린이피에스는 2025년 11월 파산선고를 받았고, 세입자들의 보증금 약 100억원은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 김주현)는 지난 4월 대표 최씨를 사기 및 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 혐의로, 이사 유씨를 사기 혐의로, 감사 이씨를 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 혐의로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파악한 피해자는 28명, 피해액은 100억3000만원이며 위조된 전대차계약서만 23건에 이른다.최씨는 수사 과정에서 변제 의사를 밝혔다는 이유로 불구속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채무를 감당하고 나면 자산을 처분하더라도 보증금 상환은 애초에 불가능한 구조였다.
리치센트럴 빌딩 건물 안내도에는 여전히 메가와티 전기차 충전소의 흔적이 남아있다 사진박승호 기자
리치센트럴 빌딩 건물 안내도에는 여전히 '메가와티' 전기차 충전소의 흔적이 남아있다. [사진=박승호 기자]

민사 소송 1심에서 승소했음에도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은 요원하다. 유일하게 돈이 나올 창구였던 소버린이피에스는 파산 절차를 밟으며 사실상 청산 단계에 접어들었다. 관련 부동산과 나머지 자산들은 임의경매에 넘겨진 상황이며, 청산이 끝나더라도 선순위 채권자들에 밀려 세입자 몫을 기대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아주경제 탐사보도팀은 최씨의 입장을 듣고자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최씨는 끝내 응하지 않았다. 유씨는 통화에서 "재무나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고 사문서위조와도 전혀 관계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씨는 통화에서 추후 연락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이후 답변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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