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특별법 시행령이 11일부터 시행되면서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지원의 무게 중심이 연구개발(R&D)에서 양산 검증까지 넓어진다. 정부가 전날 10년간 1조원을 투입하는 '함께성장 프로젝트'를 내놓은 데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협력사가 개발한 제품을 실제 공정에 가까운 환경에서 시험할 실증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기술을 개발하고도 고객사 검증 문턱을 못 넘어 납품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국내 소부장의 사업화 병목을 줄이는 작업이 동시에 시작된 셈이다.
이날 본격 시행된 반도체특별법 시행령은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와 특별회계 운용 근거를 구체화했다. 클러스터와 연구개발, 인력양성 등을 부처별 사업이 아닌 중장기 계획 아래 지원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됐다.
소부장 업체에는 자금보다 '양산 데이터' 확보가 더 높은 허들로 꼽힌다. 새 장비나 소재는 성능만 확인해서는 납품할 수 없다. 고객사 공정에서 수율과 가동률, 기존 장비와의 호환성 등을 장기간 검증해야 한다. 정부가 올해 신뢰성 평가에 200억원, 양산성능 평가에 250억원을 지원하는 것도 개발품을 실제 생산라인과 연결하기 위해서다.
소부장 기업의 실증 문턱을 낮추기 위한 지원도 구체화했다. 정부가 소부장 공급망 내재화를 위한 테스트베드 운영과 시설 임대료 감면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해 자체 클린룸이나 고가 분석장비를 갖추기 어려운 중소 소부장 업체가 제품의 성능과 양산 가능성을 검증할 수 있는 길을 넓힌 셈이다.
전날 발표된 '함께성장 프로젝트'도 같은 방향이다.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부터 실증·양산까지 함께 참여하는 사업에 향후 10년간 1조원을 투입한다. 수출 소부장 기업에는 5조원 규모 상생무역금융을 공급하고 유망 소부장·팹리스에는 약 5조원 규모 신규 펀드도 조성한다. 기존 금융 지원과 달리 실증과 구매 단계까지 묶겠다는 것이 이번 대책의 차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양산 검증 공간을 직접 넓히고 있다. 삼성전자는 협력사 제품을 검증해 실제 납품까지 연결하는 양산 연계형 테스트베드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 약 8600억원 규모 '트리니티 팹'을 짓고 있다. 약 1000평 규모 클린룸에 장비 40대를 우선 배치해 협력사가 양산 라인과 유사한 환경에서 제품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가동 목표는 2027년 5월이다.
실증 이력은 해외 진출에도 활용될 수 있다. 글로벌 반도체 업체가 신규 장비 채택 과정에서 요구하는 양산 데이터를 국내에서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유럽 고객사를 넓혀야 하는 국내 장비업체에는 검증 인프라 자체가 수출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현철 SK하이닉스 구매전략부사장은 트리니티 팹과 관련해 "양산 팹과 동일한 실증 인프라 구축을 통해 소부장 기업들이 양산의 검증 기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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