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자투리 리뷰] 망자는 왜 사후세계에 발이 묶였나

왜 '49재'인가
책 '티벳 사자의 서'에 따르면 인간의 죽음 직후 다음 생(윤회)을 선택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49일이다. 7일마다 7번씩 서로 다른 환영이 나타나 스스로의 업을 직면하는 시험에 든다고 한다. 그러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 자신의 업에 따라 특정한 빛에 이끌리고 결국 다음 생을 선택받는다고 이 책은 전한다.

이것은 즉 사람은 죽었어도 바로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으로 넘어가는 그 사이에 어떤 단계가 존재한다고 여긴다. 망자의 장례식을 치른 유족들이 숨이 멎은 지 49일째애 49재를 또 따로 지내는 이유는 바로 그 사이 있었던 7번의 심판에서 좋은 판결을 받기를 망자를 위해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사진AI 생성 이미지
[사진=AI 생성 이미지]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사후에 49일의 기간을 거쳐 7번의 심판을 정말로 받는 것인지 증언해줄 망자가 있을 리 없다. 혹 꼭 49일로 정해지진 않더라도 삶과 죽음 사이 어떤 틈, 경계에 존재하는 또 다른 공간이 있는지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죽음 이후의 그 어떤 형편이나 여건 등은 산 사람들은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그 점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더더욱 사후세계의 존재를 굳게 믿는다. 그리고 보통 신앙을 갖는다. 죽음 이후 절대적 신으로부터 생전의 업을 잘 평가받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어쨌든 사후 49일의 시간이 '티벳 사자의 서'에서는 나름의 교리와 체계가 비교적 잘 갖춰진 채 서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벳 사자의 서'에서 강조하는 사후세계는 '심판 받는다'는 것이 아닌 자신의 마음이 만든 환영과 마주하며 스스로의 '업을 직면한다'는, 보다 능동적인 과정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인간이 상상하는 다양한 모습의 '사후세계'
죽으면 수십년 동안 이어졌던 삶이 무 잘리듯 가차없이 단절되고 소멸되며 사후에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보통의 상식이라면 상식이다. 과학적으로 그 상식이 맞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산 자와 죽은 자의 교류가 불가능한 이상 사후세계는 없는 것과 다름이 없다. 우리가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그 어떤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후세계가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다. 인간의 그 바람은 너무 커서 종교를 통해서든 상상을 통해서든 이야기를 통해서든 나름대로 죽음 이후의 세상을 구상한다. 그 결과가 영화나 드라마, 책 등 꽤 많은 콘텐츠를 통해 구현된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과 영화 '콘스탄틴'은 꽤 유사한 사후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세계에 머물러 있는 영혼은 대개 끔찍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이들이 이 세계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사무친 원한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하는 누군가가 평안치 못해 마음 놓고 떠나지 못한 때문도 있다. 더 나아가 원한을 넘어 분노가 너무 커 악귀가 된 영혼 역시 음의 기운을 내뿜으며 암약하고 있다.
 
'동궁'과 '콘스탄틴'처럼 흔히 사후세계를 어둡고 칙칙하게 혹은 지옥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남겨진 영혼은 귀신이라 불리며, 사람들은 귀신이라는 존재를 두려워하고 배척하곤 하기 때문에 귀신이 있는 사후세계 역시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
 
시리즈 동궁 사진넷플릭스코리아
시리즈 '동궁' [사진=넷플릭스코리아]
 
하지만 픽사의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묘사되는 정반대의 사후세계도 있다. '코코'에 나오는 '죽은 자의 땅'은 망자들이 모여 사는 도시 같은 곳인데 총천연색의 집들이 모여 있는 큰 마을이며 이곳에는 사랑받는 가수였던 자가 죽어서도 엄청난 사랑을 받는 스타로 살고 있다.
 
'죽은 자의 땅'에는 산 사람이었을 때의 희노애락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그 무엇보다 좋은 점은 축제가 있고 음악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유일한 슬픔은 망자인 자신을 기억해주는 '산 자'가 남아있지 않으면 소멸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많은 '산 자'가 대대손손 망자를 기억해준다 하더라고 시간이 흐르면 결국 잊혀질 것이고 '죽은 자의 땅'에서 살던 망자는 소멸될 수밖에 없다. 그 사이의 시간을 영화 '코코'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화려하고 낙관적이며 행복하게 표현했다.
 
애니메이션 코코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애니메이션 '코코'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런데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조명가게'에 등장하는 사후세계는 사뭇 색다르다. 엄밀히 말해서 그곳을 '사후세계'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죽은 자와 죽음에 임박한 자(아직은 살아있는 자)가 함께 혼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두운 골목길을 중앙에 품고 있는 이 동네의 주민들은 그저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다.
 
손가락 모양이 이상한 여인이나 걸핏하면 픽 쓰러지는 남자, 흠뻑 젖은 채 항상 골목길을 배회하는 아저씨, 빨간 구두를 신고 비 오는 밤에 골목길을 오가는 키가 아주 큰 여자, 그리고 날마다 전구를 사오라는 엄마의 심부름 때문에 매일 조명가게를 들르는 여고생까지. 이상한 행동을 하지만 그저 흔한 사람의 모습이다.

 
시리즈 조명가게 사진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조명가게' [사진=디즈니플러스]
 
망자가 '사후세계'에 발이 묶인 이유는
다양한 콘텐츠에서 지옥의 모습으로, 오색찬란한 도시의 모습으로, 혹은 보통의 동네 모습으로 표현된 사후세계에는 수많은 망자가 살고 있다. 망자에게 '살고 있다'는 용어를 쓰는 것이 어색하긴 하나 어쨌든 그 세계에는 천도, 승천, 소멸 등 죽음 이후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망자들이 머물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사후세계에 머무는 망자의 존재를 산 사람은 절대 확인하지도 증명하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산 사람의 상상에서 비롯한 저 망자들은 곧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향해 갖고 있는 회한, 분노, 그리움, 사랑 등 갖가지 감정의 총체라고 봐야 한다.

죽음의 표현을 흔히 '저 세상으로 떠났다', '저승으로 갔다', 혹은 '하늘나라로 갔다'라고도 한다. 산 사람의 세상에서 완전히 떠나 전혀 다른 세상으로 갔다는 뜻이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는 교집합이 없고 완벽한 단절만 있다. 그러니까 산 사람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부대끼며 함께 살던 죽은 사람과의 갑작스러운 단절을 감당할 수 없다.
 
망자를 사후세계에 잠깐이라도 붙잡아 놓는 사람들의 상상력은 이 갑작스러운 단절을 감당하기 위한 절박함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망자와의 이별을 감당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말미를 마련하는 것. 그러니 사후세계는 망자를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 산 사람, 남겨진 사람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수많은 망자가 사후세계에 발이 묶여 있는 동안 산 사람은 이별의 과정을 힘겹게, 천천히 치러내고 마침내 그 과정이 마무리되면 망자는 소멸의 수순을 맞는다. 그렇게 슬픔과 공허를 극복하고 산 사람은 일상을 이어간다.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일상은 사람들의 내면에서 이뤄지는 숱한 격랑들을 겪어내며 유지되는 경이로운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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