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주하는 인공지능(AI) 사업의 무게중심이 건물과 단지를 짓는 공사에서 이미 지어진 인프라 위에 서비스를 얹는 운영 사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조달청 나라장터에서 공사 형태로 발주된 AI 관련 사업 예산은 1년 새 90% 넘게 줄어든 반면 국가 단위 프로젝트의 몸집은 나라장터 전체 조달 규모를 압도하는 수준으로 커졌다.
25일 IT업계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8월 24일까지 나라장터에서 '인공지능' 키워드로 발주된 공사 형태 사업은 5건, 5억원 남짓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9건, 78억8000만원과 비교하면 예산 기준 94% 줄어든 규모다.
지난해에는 경상북도교육청 AI교육센터 이전건립 공사 한 건에만 52억7000만원이 투입됐고 여기에 딸린 기계설비 전기 정보통신 소방 공사까지 더하면 이 사업 하나로만 60억원 가까이 집행됐다. 올해는 대형 신축공사가 자취를 감췄고 인공지능집적단지 전기계량기 설치공사(2억7000만원) 등 소규모 부대공사만 남았다.
지방자치단체도 지난해 경기도, 경상남도 등 일부에 그쳤던 AI기본계획 수립이 올해는 서울, 부산, 순천, 여수, 춘천, 고령, 금산, 포항 등 전국으로 확산했다. 인프라를 짓던 단계에서 실제 활용하는 단계로 넘어갔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조달 시장이 늘었지만 중소 IT 업계는 여전히 팍팍한 현실을 토로한다. 대부분 사업들이 IT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컨소시엄에 집중되면서다.
올해 1월부터 8월 24일까지 나라장터에서 인공지능 키워드로 발주된 사업 총액은 939억원으로, 전년 634억원 대비 50.6% 늘었지만 같은 기간 정부가 소수 대기업 컨소시엄에 맡긴 3대 프로젝트 사업비를 합치면 나라장터 전체 조달액의 30배에 육박한다.
가장 큰 격차는 국가AI컴퓨팅센터다. 삼성SDS 컨소시엄이 단독 입찰로 수주한 이 사업은 총사업비만 2조5000억원 이상이다. 초기 자금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책은행 예산 1160억원이 투입됐다. 단일 사업의 초기 사업비로만 8개월 치 조달청 인공지능 사업 예산총액을 넘어섰다.
컨소시엄에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S 등 삼성 계열사 3곳과 네이버클라우드, 카카오, KT가 참여했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사업도 총 예산 2136억원이 투입돼 나라장터 조달 총액의 2.3배 규모다. 네이버클라우드, 업스테이지, SK텔레콤, NC AI, LG AI연구원 등 5개 정예팀이 선정돼 그래픽처리장치(GPU) 데이터 인재를 종합 지원받고 있다.
전 국민 무료 AI 챗봇을 만드는 '모두의 AI' 사업에도 정부 보유 엔비디아 B200 GPU 512장이 투입된다. 시중 임차 단가로 환산하면 연간 405억원 상당의 정부 인프라가 대국민 서비스 개발 기업 2~3곳에 돌아가는 셈이다. 이 사업 역시 독자 AI 모델을 절반 이상 활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 사실상 독파모 5개 팀과 겹치는 소수 대기업이 수혜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라장터를 통해 중소·중견 IT기업이 1년간 수주할 수 있는 사업 규모를 대기업 컨소시엄은 단 세 개 사업으로 수십 배를 뛰어넘는 셈이다. 게다가 이들 사업은 조달청 경쟁입찰이 아니라 정부 주도 공모와 특수목적법인(SPC) 출자 방식으로 진행돼 애초에 중소기업이 참여할 통로 자체가 제한적이다.
부처 간 사업 조율 부족도 변수로 꼽힌다. 올해 신규 사업 가운데 10개 부처가 동시에 같은 상용화 지원사업에 뛰어든 사례가 확인됐고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된 20개 신규 사업 중 14개가 AI 관련 사업이었다. 건설에서 서비스로, 소수 지자체에서 전국으로 조달 구조가 재편되는 동안 조 단위로 커진 대기업 몫에 대한 검증 절차는 상대적으로 헐거워졌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중견 IT 기업 대표는 “오히려 정부가 AI 전환을 이유로 기존 중소·중견기업 사업을 통합해 대기업에 넘기는 사례가 많아졌다”며 “시장 자체가 대기업 중심이거나 미국 자본 기업으로 흘러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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