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원화 국제화, 문을 여는 것보다 중요한 것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 모습 20260211사진사진공동취재단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 모습. 2026.02.11[사진=사진공동취재단]

정부가 지난 7월 원화를 '규제통화'에서 '자유교환통화'로 전환하기 위한 '원화 국제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역외 원화 결제 인프라를 구축하고 원화 거래 및 결제 기반을 해외로 확장하겠다는 취지다. 국내 자본시장은 이미 외국인의 국내 증권 투자가 크게 늘었지만 외환 거래 인프라는 여전히 국내 시장 중심으로 제한돼 있었다.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끈기 있는 시도는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갖는다.

한국은행도 외국인의 원화 결제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은행원화국제결제망'을 내년 1월 도입한다. 한국인이 국내 은행에 달러 계좌를 개설해 한국인끼리 달러를 송금하듯 외국인이 자국 은행에 원화 계좌를 개설해 외국인끼리 원화를 송금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외국인의 국내 금융시장 접근성 개선이 기대된다.

그러나 냉정한 현실을 돌아보면 원화의 국제적 위상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난해 수출대금 중 원화 결제 비중은 3.4%, 수입대금 원화 결제 비중은 6.6%에 그쳤다. 원화 결제 비중이 소폭 늘었으나 수출의 84.2%, 수입의 79.3%는 여전히 미 달러화로 이뤄진다. 한국 경제가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했지만 정작 무역 현장에서 원화는 글로벌 거래 통화로서 존재감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만큼 제도적 빗장을 풀어 문을 열어 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문으로 들어올 글로벌 투자자들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유동성과 실용적 매력을 갖추는 일이다. 한 국제금융기구 전문가는 원화 국제화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한 통화 자체의 개방을 넘어 '통화의 국제화'와 '국채의 국제화'를 패키지로 묶어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 국채가 세계국채지수(WGBI)에 성공적으로 편입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은 한국 국채를 신뢰할 수 있는 우량 자산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핵심은 바로 이 국채의 활용성이다. 글로벌 투자자나 해외 은행들이 보유한 한국 국채가 국경 간 거래에서 장중 또는 익일 담보로 손쉽게 활용될 수 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해외 투자자 관점에서는 원화와 한국 국채를 하나의 짝으로 보게 되며, 원화는 단순한 상품·서비스 결제 수단을 넘어 해외 금융거래와 자금 조달의 핵심 담보 수단으로 격상된다. 국채 담보 활용성이 열려야 비로소 원화 수요가 폭발적으로 다양화되고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역외 원화 거래의 약 68%는 실물 원화의 인도 없이 환차손익만 달러로 정산하는 차액결제선물환(NDF) 거래에 편중돼 있었다. 이는 해외 투자자들의 원화 거래 수요는 높으나 원화를 직접 조달·결제할 인프라가 부족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역외 결제망을 트고 국채 담보 활용 등을 지원해 실제 원화의 보유와 유통을 자유롭게 만들어줄 때 비로소 NDF 중심의 기형적 구조에서 벗어나 현물환, 외환스와프, 원화 단기자금시장 등 깊이 있는 시장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결국 원화 국제화의 본질은 원화 가치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화를 깊고 유동적인 통화로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제도적 규제를 풀었다고 해서 글로벌 시장 참가자들이 자동으로 들어와 거래를 터주지는 않는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24시간 언제든 원화와 국채를 짝지어 담보로 활용하고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탄탄한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문을 열어 젖히는 단계는 끝났다. 이제는 그 문을 통해 들어온 해외 투자자들이 원화라는 유동성의 바다에서 마음껏 거래할 수 있도록 국채 담보 연계 등 실질적이고 매력적인 거래 환경을 바쁘게 조율해 나갈 때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