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하랄 5세 국왕이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35년간 왕위를 지키며 소탈하고 통합적인 행보로 국민적 사랑을 받아온 하랄 5세는 아들 호콘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생을 마감했다.
노르웨이 왕실은 28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하랄 5세가 이날 오전 6시35분 오슬로 대학병원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왕궁 지붕에 걸린 왕실 깃발은 조기로 내려졌다.
하랄 5세는 지난 17일부터 혈액 내 세균 감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는 지난 주말을 전후해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으며, 왕실은 별세 하루 전인 27일 그의 상태가 극도로 위중하다고 밝혔다.
BBC는 하랄 5세가 희귀 혈액질환인 용혈성 빈혈 치료를 받아왔으며, 건강 악화로 2024년 4월부터 공식 활동을 크게 줄였다고 전했다. 그가 입원한 이후에는 아들 호콘 왕세자가 섭정으로서 국왕의 공식 업무를 대신했다.
하랄 5세는 1991년 부친 올라프 5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35년간 노르웨이를 통치했다. 유럽 최고령 군주였던 그는 정치적 실권은 없었지만 국가적 위기 때마다 국민을 하나로 묶는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2011년 극우주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오슬로 정부청사와 우토야섬에서 폭탄·총기 테러를 벌여 77명이 숨졌을 당시 하랄 5세는 국민에게 서로를 지지하고 두려움에 굴복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BBC는 당시 그의 연설이 노르웨이 국민에게 군주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랄 5세는 왕실의 전통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평민 출신인 소냐 하랄센과 1968년 결혼하면서 왕실의 문턱을 낮췄고, 이후 자신의 자녀들도 평민과 결혼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2016년에는 종교와 인종, 성적 지향의 다양성을 포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로 주목받기도 했다. BBC는 하랄 5세가 왕실의 재정과 건강 문제 등을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노르웨이 왕실을 더욱 평등하고 개방적인 조직으로 변화시켰다고 역사학자와 왕실 전문가들의 평가를 전했다.
다만 최근 노르웨이 왕실은 가족을 둘러싼 논란과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BBC에 따르면 하랄 5세의 며느리인 메테마리트 왕세자비는 미국의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친분으로 논란이 됐으며, 그의 아들 마리우스 보르그 회이뷔는 성폭행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했다.
그럼에도 하랄 5세 개인에 대한 국민적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BBC가 인용한 현지 전문가들은 왕실에 대한 비판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하랄 5세 개인에게는 비판이 거의 향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모두가 하랄 왕을 사랑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고 보도했다.
하랄 5세의 뒤를 이어 아들 호콘 왕세자가 새 국왕으로 즉위했다. 하랄 5세에게는 약 58년간 함께한 소냐 왕비와 딸 마르타 루이세 공주, 아들 호콘 국왕, 손주 6명이 유족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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