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불완전한 가족이 만드는 완전한 구원 서사…영화 '비광'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플레이그램 ㈜콘텐츠지오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플레이그램, ㈜콘텐츠지오]
이지원 감독의 작품을 아는 관객이라면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도 전에 단번에 그의 인장을 알아차릴 수 있다. 프레임 안 온도, 습도, 계절감과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치열함과 진정성이 작품 곳곳에 단단히 뿌리내려 있기 때문이다. 영화 '미쓰백'을 통해 고유의 언어를 증명했던 이 감독이 신작 '비광'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의 처절한 사투 한가운데서도 연대와 구원에 대한 믿음, 그 희망의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다.

한국 야구의 간판스타였던 중구(류승룡 분)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톱스타 남미(하지원 분). 전성기를 구가하던 두 사람은 갑자기 나타난 중구의 딸 동주(김시아 분)로 인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파경을 맞는다.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한 채 각자의 삶을 살고 있던 중구와 남미는 여중생 사망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동주를 구하기 위해 벼랑 끝에서 다시 만나고, 자신들을 추락시킨 8년 전 악연이 현재까지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의 제목인 '비광'은 결말에 이르러서야 진짜 의미를 드러낸다. 화투패 속 비광은 분명 '광'이지만 다른 광들과는 조금 다르다. 비광이 포함된 세 장의 광은 온전한 3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다섯 장의 광을 모두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패이기도 하다. 혼자서는 어딘가 모자라고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함께일 때 비로소 빛나는 존재. 영화 속 인물들 역시 꼭 그렇다. 누구 하나 완전하지 않고 저마다 상처와 결핍을 안고 있지만, 이들이 하나로 모였을 때 비로소 각자가 가진 힘은 제 빛을 낸다.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플레이그램 ㈜콘텐츠지오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플레이그램, ㈜콘텐츠지오]

이는 이지원 감독이 꾸준히 천착해온 연대와 구원의 서사와도 맞닿는다. '미쓰백'에서 세상이 외면한 두 사람이 서로를 구해냈다면, '비광'에서는 무너진 가족이 서로를 지키기 위해 다시 손을 맞잡는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인물들이 말 그대로 진흙탕을 구르면서도 끝내 등돌리지 않는 모습이 먹먹하게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처절한 순간에도 이지원 감독은 인물들을 완전히 절망 속에 버려두지 않는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믿음, 그 작은 희망을 놓지 않는 시선이 '비광' 곳곳에 배어 있다.

공간과 계절을 쓰는 방식도 이 감독 특유의 감각이 짙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건의 주요 배경인 우림천 교각부터 중구가 머무는 복도식 다세대 아파트까지, 공간은 단순한 배경으로 머물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이미지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빠져나가도 무엇이 기다릴지 알 수 없는 길은 추락한 인물들의 삶과 그대로 맞물린다. '미쓰백'이 겨울이라는 계절감으로 이 감독 특유의 황량함을 보여주었다면, '비광'은 눅진한 여름을 통해 인물들의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체감하게 한다.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플레이그램 ㈜콘텐츠지오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플레이그램, ㈜콘텐츠지오]

생생한 캐릭터 역시 '비광'의 강점이다. 중구와 남미, 동주는 저마다의 생명력을 얻어 숨 쉬며 우리 주변 어디에선가 마주쳤을 법한 생생함으로 다가온다. 이들을 둘러싼 가족들은 더욱 그렇다. 처음엔 보기만 해도 진저리 나는 피곤한 가족처럼 보이지만, 티격태격하는 사이사이 드러나는 정과 생활감이 묘하게 사랑스럽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이 징글징글한 가족들에게 어느새 마음을 내주게 되는 것도 '비광'이 가진 힘이다.

배우들의 앙상블은 이 처절한 서사를 지탱하는 단단한 축이다. 류승룡과 하지원은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파격적인 얼굴로 스크린을 장악하고, '미쓰백' 이후 감독과 재회한 김시아는 한층 깊어진 눈빛으로 극의 중심을 꿰뚫는다. 여기에 김해숙, 김선영, 김영민의 합류는 그야말로 영화의 '치트키'다. 등장만으로도 공기의 흐름을 바꾸며 극에 무게를 더한다. 9월 2일 극장 개봉. 러닝타임은 109분이고 관람 등급은 15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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