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美 압박 거셀수록 '딜'의 값이 오른다

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자고로 우리나라가 외교를 잘해야 생존하고 발전한다는 말이 있다. 주변 강국 때문이다.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평화로운 주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외교다. 과거 조공 체제에 편입된 우리 왕조의 외교 대상은 오늘날처럼 많지 않다. 이따금 중국 동북 지역에 군림했던 요나라, 금나라 및 후금을 상대했다. 일본은 조선시대에야 우리 외교 지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근대에 들어와서 러시아, 미국, 영국 등과 외교를 하기 시작했다. 6··25 전쟁 이후에 우리의 외교 지평은 주변 4강을 초월해 세계로 확대되었다. 이제는 우리 국격과 국력에 걸맞게 ‘딜’을 두려워하지 않고 딜을 하는 외교를 할 때이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우리 외교도 고도의 순발력, 탄력성,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 같은 외교는 국가 이익과 국민의 안위와 행복을 위한 ‘딜(deal·협상과 거래)’을 전제한다. 트럼프 행정부 2기에 들어와 특히 이러한 능력 발휘가 필요하다. 1기 때와 다르게 그는 동맹을 포함한 우방에까지 보복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에 투자할 것을 압박하고 그가 일으킨 전쟁에 파병을 요구한다. 게다가 그의 요청에 미온적이고 비협조적이면 더 많은 관세 부여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국이 이런 외교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약점을 가리기 위해서다. 우리는 그 약점을 공략하고 우리 국익을 극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딜로 맞대응해야 한다. 이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딜의 묘수는 단순히 같은 영역의 유사한 품목을 맞교환하는 방식이 아니다. 즉 경제적인 문제의 해결 대가로 경제적 혜택을 노리는 일차원적인 접근 방식이 아니다. 경제 문제의 해결로 군사 분야에서 이득 취득이 가능하다. 또 군사 문제의 해결로 정치적 이익을 노릴 수 있다. 이제는 한 영역의 이슈를 동일한 영역의 것에 국한 지어서 득실 계산하는 시대는 지났다. 현재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산적한 문제가 많다. 반도체 관세 문제만 봐도 미국이 요구하는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로 해결하는 방식에만 매몰되어선 안 된다. 우리는 반도체 생산이라는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역발상이 필요하다. 그러면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딜을 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영역과 분야에서 미국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카드로 협상해야 한다.

미국이 우리를 압박할 때는 그 이면에는 미국의 취약점이 숨어 있다. 당황할 필요도 없고 여유를 가지고 이를 적극 공략할 수 있는 이유다. 여유는 외교에서는 절대적이다. 전략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고, 우리 외교도 유연성, 탄력성,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호기’를 실기할 수 있다. 미국의 압박은 우리에게 호기다. 미국의 취약점을 공략하는 ‘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딜’이 거의 불가능한 나라다. 중국도 한때 제국, 대국으로 군림했지만 중국 외교는 조공 체제 안에서 편하게 이뤄졌다. 타협과 딜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서구 제국주의에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딜의 전통이 없는 중국 외교를 오늘날 상대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또한 중국이 일방적이고 고압적이고 강제적인 자세로 서투른 외교를 남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은 지난 몇 년간 우리를 많이 압박했다. 미국의 취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말이다. 가령, 2022년 미국이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과학법(일명 ‘반도체법’)도 이를 노출시켰다. 우리가 이 법안들을 환영해야 하는데 우리 정부는 우리 기업과 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 차별에만 매몰되었다. IRA는 중국산 핵심 광물과 배터리 부품을 쓴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 지급을 제한한다. 다시 말해 전기차에 중국산 부품을 내포한 배터리의 탑재 규제로 이의 사용을 사실상 배척했다. 당시 중국산 이차전지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60% 이상이었다. 나머지는 우리 기업 제품이 거의 장악한 구조였다. 2025년 기준 37%에 달했다. 중국산을 제외하면 미국은 우리 제품에 의존해야 한다. 우리의 독점이 가능했다. 이를 우리의 레버리지로 삼아 미국에서 더 큰 이득을 취할 수 있었던 호기였다. 가령, 우리가 수출하는 전기차에 대해 더 많은 관세 혜택(보조금)을 요구할 수 있었다.

불리해진 중국 기업은 우리의 새만금, 충주, 평택과 포항 등지에 공장을 세웠다. 미국 시장에 우회 진출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나라의 유리한 입지를 방증한다. 지방정부는 해외 투자 유치에 눈이 멀어 우리의 경쟁 업체에 호기를 대신 제공했다. 이들에게 관세 피난처(tax haven)를 공여했다. 중앙정부의 간여도 없었다. 우리 국익을 스스로 훼손한 처사였다. 중국이 우리와 경제·무역 협력 대신 산업 협력을 줄곧 요구하는 이유다. 중국의 속셈은 한·미 동맹 관계는 물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우리의 지경학적 이점을 자국의 이점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를 간과하고 우리는 중국의 투자에만 함몰되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식의 외교를 한 셈이다.

반도체법 또한 미국 기업이 10년간 중국에 첨단 반도체 시설 투자 확대를 제한했다. 미국이 반도체 관련 미국 기업의 사업을 규제하고 이들의 중국 공장은 물론 협력 업체를 고사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미국 기업이 중국의 반도체 관련 산업과 자국 기업에 더 이상 투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생산 차질은 자명했다. 역으로 이는 우리 제품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 상승을 의미한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낸드플래시에서 우리 제품이 세계 시장의 점유율을 보면 가히 납득되는 대목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법안을 또한 두 손 들고 환영했어야 했다. 반도체를 무기로 미국을 상대로 다른 영역에서 우리 국익을 확대할 수 있는 호기였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유효하다. 오히려 미국이 지난 5월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 대표와 9월 2일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반도체의 ‘표적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는 기업의 대미 수출 반도체 제품에 고관세 부여를 검토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주력 수출품은 역시 메모리 반도체, HBM 반도체, 낸드플래시 등이다. 이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각각 70% 80%와 50% 정도다. 미국의 높은 의존도를 시사한다. 또한 우리의 호기를 의미한다. 우리 기업의 미국 반도체 공장 운영과 건설 문제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이런 반도체 산업의 구조를 우리의 레버리지로 이용해야 한다.

미국의 검토 의사는 미국의 높은 해외 의존도를 생각하면 우리 입장에서 매우 부당하고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다. 미국이 그만큼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증설에 목을 매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우리는 노출된 미국의 취약점을 공략해야 한다. 미국은 미·중 과학기술 분야 경쟁 구조에서 우위의 간극을 유지하려 한다. 그 핵심은 반도체에 있다. 반도체는 4차 산업의 심장이다. 따라서 미국의 의도는 해외에 높은 의존도를 대폭 감소하고 자급자족하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반도체 공장의 설립을 압박한다.

역으로 우리는 미국과 딜을 해야 한다. 우리는 표적 관세를 거부하고 대안 수출 시장으로 압박을 가할 수 있다. 미국이 대체 공급원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을 역공하는 것이다. 우리가 표적 관세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으면 우리는 대미 수출 물량을 줄이고 대안 시장에 공급을 더 확대해 우리 기업의 생존과 이익을 챙겨야 하는 명분이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우리의 반도체 수출 확대와 공장 증설과 맞바꿀 카드가 많다. 우리가 추진하는 핵추진 잠수함 사업에서부터 미 군함 건조 사업, 미 군함 보수·유지(MRO) 사업 등까지, 이들 중 하나라도 국내에서 이뤄지도록 딜을 할 수 있다.

쿠팡 사태 역시 우리에게 호기가 될 수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3개월 만인 2025년 4월에 ‘위대한 미국을 다시 만들자(MAGA) 무역 정책’을 소개했다. 3대 원칙 중 하나가 미국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차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쿠팡 사태는 미국 기업의 중대한 과오로 빚어진 사건이다. 우리나라와 국민이 공분할 만하다. 과징금 추징도 정당하다. 하지만 역으로 우리가 미국을 압박하는 기회로 이용할 만도 했다. 과징금 책정에 앞서 미국에 과실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경고에 그치는 선택지도 있었다. 엄중히 경고하면서 과징금을 추징하되 미국에서 최대한 많은 이득을 취하는 방법이다. 앞서 언급한 핵 추진 잠수함 사업의 전제인 핵협정 개정 요구도 가능하고 핵 억제력 강화, 국내 조선소에서 미 군함 건조와 MRO를 수행하는 딜도 가능하다. 부수적으로 미국 비자 문제와 같은 영사 문제 해결과도 연계 가능하다. 지금 미국 비자 문제로 고충을 받는 국민과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은 우리에게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한다. 미국의 요구 배경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미국의 동맹 중 우리 수준의 병력과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본은 평화헌법, 필리핀과 호주는 부족한 군사력, 유럽의 나토 회원국은 역외라는 이유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미 동맹 조약을 가지고 딜을 해야 한다. 조약은 공동 방위 범위를 (서)태평양으로 명확히 제한한다. 미국이 우리의 군사적 지원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만큼 우리가 호기로 여기고 취할 수 있는 이득도 많다. 동맹 조약이 규정한 역외 지역에 우리의 파병은 의무 사항이 아니다. 이에 따른 희생을 감수하는 파병 결정을 해야 하는 만큼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전략적 옵션 이외에도 첨단 군사 및 과학 분야의 원천 기술의 대폭적인 이전이나 미 군함의 건조나 유지보수를 위한 방공망, 방어망의 구축 등을 요구할 수 있겠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우리는 미국이 짜놓은 글로벌 공급망에 자동 편입된다. 이 구조는 미국이 원천기술을 제공하고, 일본과 서구가 장비와 부품 등을 공급하고 우리가 제조·생산하는 분업화된 구조이다. 그들이 못하는 걸 우리가 하는, 레버리지를 갖고 있다. 갑과 같은 을의 입장이다. 미국의 압박에 노심초사하기보다 ‘두려운 개가 짖는다’는 식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미국이 불리한 약점이 있기 때문에 압박하는 식으로 말이다. 즉 우리가 딜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오히려 이런 약점을 공략해 우리 국익을 극대화하고 국익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역압박해야 한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웨슬리언대 정치학 학사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석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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