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의 '가로세로'] 철 지난 바닷가에서 거문고 소리를 듣다

원철 스님
[원철 스님]

 
영금정(靈琴亭)이라고 했다. 강원도 속초 해변에는 신령(神靈)스런 거문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자가 있다고 한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거문고 소리를 낸다고 하니 정말 희유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 신비한 소리를 잘 듣기 위해선 가능한 한 바닷물과 접해있는 바위 곁에서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군 초소 자리였던 언덕 위에서 듣는 것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다를 향해 다리를 내달았다. 사실 다리건설이 목적은 아니었다. 항구를 넓히고 개발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다. 어쨋거나 부수적으로 생긴 다리 끝에 다시 정자를 만들었다.
 
두 정자의 건립 목적은 동일하다. 영험한 거문고 소리를 제대로 잘 듣고자 함이다. 그래서 새 정자에도 시치미 뚝 떼고 영금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얼떨결에 영금정이 두 개가 된 것이다. 두 군데 모두 모각한 현판을 달았다. 오리지널 ‘영금정’ 현판은 유리를 덧씌워 비바람에 더 이상 부식되지 않도록 처리했다. 그리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추어 야외에 전시해 두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모사본으로 역사가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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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금정 원래 현판을 전시해 두었다/사진, 필자제공] 
 
어쨋거나 두 개의 정자와 세 개의 현판이 같은 이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외지인에겐 의아함을 숨길 수 없었지만 지역주민에게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었다. 언덕 위 제1영금정에서 파도소리를 듣건 새로 만든 다리 끝 제2영금정에서 파도소리를 듣건 거문고 소리만 제대로 들을 수 있다면 그게 무슨 대수랴. 어쨋거나 파도소리가 거문고 소리를 낼 만큼 신비한 바닷가에서 음악소리까지 잡아낼 수 있는 뛰어난 ‘귀 명창’ 주민들이 사는 곳이기에, 답사객으로 온 나그네 역시 철 지난 바닷가에서 거문고 소리를 듣고자 두 귀를 쫑곳 세웠다.

동해 바닷가 영금정에는 거문고 소리를 듣고자 갈매기가 날아 왔겠지만 사실 거문고 연주장의 최애 청중은 학(鶴)이다. 하지만 이름이 같다고 실물까지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학은 인간의 인지력으로는 두루미 정도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전설상의 학은 날개가 여덟이고 다리가 하나이며 새의 부리 모양에 사람 얼굴을 가졌다. 기린도 마찬가지다. 동물원에 갇혀있는 목이 길다란 기린은 이름만 빌린 짝퉁이다. 일본 ‘기린맥주’ 상표처럼 사자 비슷하게 생긴 신령스런 기린이 진짜 기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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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영금정에서 파도소리가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를 들을 수 있다/사진, 필자제공] 
 
중국악기를 고구려 왕산악(王山岳)이 국산화 작업으로 거문고를 만들었다. 이를 연주할 때 허공에서 춤춘 관객은 학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검은 학(玄鶴)이다. 이를 ‘현학내무(玄鶴來舞)’라고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일천년을 살면 청학(靑鶴)이 되고 이천년을 살면 현학이 된다고 했다. 그 수명으로 보건데 인간계는 물론 신선계까지 마음대로 오가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하겠다. 더불어 거문고 역시 인간세계와 신선세계까지 소리로 덮을 수 있는 시공간을 초월한 악기라고 하겠다.
 
그래서 삼신산(三神山 신선의 거처)으로 불리는 경남 하동 지리산 쌍계사에는 청학루를 건립했다. 뿐만 아니라 인근 불일폭포를 중심으로 청학봉 백학봉이 자리잡았다. 학들을 거문고 소리로 부르던 언덕인 환학대(喚鶴臺)도 있다. 진감(眞鑑 774~850)국사의 비문을 쓴 최치원(崔致遠 857~900 호:고운)은 쌍계사를 ‘호중별유천지(壺中別有天地 호리병 속에 있는 별천지)’라고 했다. 별천지는 신선세계를 가르키는 말이다. 그는 늘 신선을 끔꾸었다. 합천 해인사 골짜기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면 수십마리의 학이 놀려 왔다고 하니 살아서도 신선과 진배없는 삶을 살았다. 가야산에서 우화등선(羽化登仙 사람의 몸에서 날개가 솟아 신선세계로 날아감)했다는 마지막 승천 이야기는 후학들이 할 수 있는 고운(孤雲)선생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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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학사대에서 최치원은  학과 더불어 노닐었다/사진, 필자 제공] 
 
신선의 악기인 거문고는 인간세계의 연주자도 옷매무시와 몸가짐을 바르게 한 뒤에야 연주를 시작할 만큼 예사롭지 않는 악기였다. 또 연주 환경도 까다로웠다. 거센 비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또 지나치게 번잡한 곳이거나 교양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연주하지 말라고 했다. 이처럼 거문고는 연주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그 형식이 엄격했다. 따라서 준비하고 연주하고 감상하는 과정 자체가 선비들의 수신(修身)을 위한 악기라는 것을 알 수 있겠다.
 
충남 예산 수덕사 박물관에는 만공(滿空 181~1946)스님이 연주했다는 거문고가 전해져 온다. 불가(佛家)에서도 거문고를 수행의 방편으로 삼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초기경전인 《아함경》에도 거문고를 비유로 한 대화가 오고 갔으니, 그 등장은 무려 이천오백여년 전이다. 거문고를 잘 다루는 소나(Sona)에게 “줄을 너무 팽팽하게 하면 줄이 끊어진다. 너무 느슨하면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알맞게 조여야만 제대로 된 소리가 난다.”는 스승의 말씀 속에서 수행도 거문고 줄처럼 완급(緩急)을 적절하게 조정해야 함을 제자에게 일러주고 있다.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거문고는 무현금(無絃琴) 즉 줄없는 거문고다. 중국에서 일곱 개의 줄(七絃琴)로 이루어진 악기를 고구려에서 여섯 개로 줄이더니(거문고) 급기야 선종의 수행자들은 아예 줄이 없는 거문고(無絃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줄없는 거문고를 소리없이 연주하고 청중은 들음없이 듣는다’는 매우 선적(禪的)인 표현까지 구사했다. 설함없이 설하니(不說說) 들음없이 듣는다(不聞聞)는 경지라고나 할까.
 
솔바람 소리 혹은 눈 내리는 소리를 통해서도 거문고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음(知音)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파도와 바위가 부딪치며 내는 줄 없는 거문고 소리를 마음의 거문고(心琴)소리로 환원할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영금정을 찾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하겠다.
 
  
원철 필자 주요 이력

▷조계종 연구소장 ▷조계종 포교연구실 실장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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