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세입자] 2000가구 단지에 전세 1건…이사 포기하는 세입자들

  • 전세 매물 씨 마르자 갱신계약 늘고…못 구한 세입자는 월세·소형 매매로 이동

20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이은별 기자
20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사진=연합뉴스]

약 2000가구 규모인 서울 마포구 마포태영 아파트에 나온 전세 매물은 단 1건이다. 올해 7~9월 확인된 전세 계약 4건은 모두 갱신계약이었다.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와 맺은 전세 계약은 확인되지 않았고 기존 세입자들이 계약을 연장하며 거주를 이어갔다.

마포구 소재 한 공인중개사는 “갱신계약은 거의 다 사용한다고 봐야 할 정도”라며 “전셋값이 많이 오른 데다 이사를 하려면 중개수수료나 이사비 등 부대비용도 들어가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집을 찾기보다 기존 집에 계속 거주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전세 매물이 줄고 보증금 부담은 커지면서 이사를 포기하는 세입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계약 만료를 앞두고 새 전셋집을 알아봐도 기존 생활권에서 조건이 비슷한 집을 찾기 어려워 계약을 연장하거나 월세로 눈을 돌리는 모습이다.

22일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노원구 중계주공3단지는 1500여 가구 규모 대단지지만 전세 매물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이후 전세 거래도 확인되지 않았다.

인근 한 단지에서는 이달 초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한 전세 계약이 보증금 4억8000만원에 체결됐다. 지난달 신규 전세 계약 중에는 보증금이 6억5000만원인 사례도 있었다.

노원구 상계동 소재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한 달간 전세 매물이 거의 없었고 지난해와 비교해 많이 줄었다”며 “2000가구 규모인 한 단지에서도 새로 나오는 전세 물건이 1~2건 정도에 그친다”고 말했다. 이어 “꾸준히 전세 문의가 들어오지만 조건이 괜찮은 매물은 나오자마자 계약된다”고 설명했다.

양천구 목동에서도 전셋집을 찾는 수요에 비해 매물이 부족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목동7단지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를 찾는 대기 고객이 꾸준히 있다”며 “전세 매물 하나가 나오면 하루만 평균적으로 3~4명이 보고 간다. 매물이 나오자마자 바로 계약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전셋집을 구하더라도 오른 보증금에 중개보수와 이사비까지 마련해야 한다. 주거 여건을 바꾸려던 세입자도 이사에 드는 비용을 따져 기존 집에 머무는 쪽을 택하고 있다고 현장에서는 설명한다.

매물 부족 속에 임대인이 세입자를 고르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노원구 소재 한 공인중개업자는 “임대인들이 세입자 가족 수나 반려동물 유무를 확인하고, 월세는 소득이나 직업을 묻기도 한다”고 전했다. 세입자보다 임대인의 선택권이 커지면서 중개 과정에서도 임대인 요구를 최대한 맞추려는 분위기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보증금 자체가 높아진 데다 임대차시장 흐름도 전세에서 월세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세에서 월세로 넘어가는 것은 전월세시장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라며 “현재는 매물이 많지 않다 보니 임대인 우위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실거주 요건 등 정책적 요인도 전세 공급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봤다. 전세를 구하기 어려워진 세입자가 기존 집에 머물거나 월세로 이동하면서 주거 선택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실거주 요건과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등 영향으로 전월세로 공급될 수 있는 매물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며 “등록임대사업자의 임대기간 종료도 전세 물량 감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셋값이 많이 오르면서 세입자가 전세를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월세로 밀려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신규 전세를 구하지 못한 세입자가 기존 주택을 갱신하거나 월세로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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