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 환경과 R&D를 연계해 국내 기업이 특화망과 차세대 AI 네트워크 기술을 검증하고 사업화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 이상훈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원장의 말이다.
AI는 이제 방송콘텐츠를 만드는 b데 머물지 않는다. 통신망을 스스로 관리하고 공장과 물류를 움직인다. 방송·전파 지원기관이던 KCA도 산업 AX의 인프라 기관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AI가 제대로 움직이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 흔히 GPU와 데이터센터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아무리 영리한 AI도 데이터가 오갈 길이 막히면 손발이 묶인다. 사람의 뇌가 신경을 거쳐 몸을 움직이듯 AI에도 정보를 받아들이고 명령을 실어 나를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그 신경망 안에도 AI가 깃들기 시작했다.
KCA가 참여하는 '차세대 네트워크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사업이 대표적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주관하고 KCA와 KT, HFR 등이 함께 2030년까지 네트워크 AI 파운데이션 모델(NFM)을 만드는 국가 R&D다. 생성형 AI가 사람의 언어를 익힌다면 NFM은 통신망에서 쏟아지는 데이터를 학습해 네트워크를 이해하고 운용하는 AI를 지향한다.
KCA의 몫은 현장이다. 5G 특화망의 로그 데이터를 모아 데이터 레이크를 쌓고, 형태가 제각각인 멀티모달 데이터를 정제하며, AI 에이전트를 실제 특화망 운용에 투입해 검증한다. 모델을 연구실에서 만들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네트워크 위에서 돌려보는 일이다.
변화의 핵심은 운영 방식에 있다. 지금까지 통신망은 사람이 상태를 살피고, 문제가 터지면 원인을 뒤쫓아 수습하는 방식으로 굴러왔다. AI가 방대한 네트워크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읽어낸다면 이상징후를 먼저 감지하고 장애 원인을 짚어내며 운영을 거들 수 있다. AI가 네트워크를 쓰는 시대에서 AI가 네트워크를 돌보는 시대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 흐름이 산업 AX와 맞닿는 지점이 5G 특화망이다. 불특정 다수가 쓰는 이동통신망과 달리 공장과 물류센터, 병원과 농업시설이 제 쓰임새에 맞춰 깔아 쓰는 전용망이다. 수많은 기계와 센서, 로봇이 한꺼번에 접속하는 현장에서 빠르고 흔들림 없는 통신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다.
전남 무안 서남부채소농협 산지유통센터(APC)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KCA가 이곳에 5G 특화망을 깔았고, 농산물이 들어와 선별·포장을 거쳐 출하되기까지의 과정을 5G와 로봇, 센싱, 자율주행 기술로 자동화하는 실증이 진행되고 있다. 통신망이 사람의 스마트폰을 잇던 데서 벗어나 기계와 로봇을 움직이는 산업 기반으로 탈바꿈하는 현장이다.
AI 시대의 통신망은 열려 있어야 한다. 오픈랜이 중요한 이유다. 오픈랜은 제조사가 다른 통신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서로 맞물려 쓸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개방형 구조로 바꾸는 기술이다. 특정 기업 장비에 대한 종속을 끊고, 더 많은 기업이 네트워크 생태계에 들어설 문을 연다.
KCA는 전북 익산의 '이음5G 테스트베드'에서 특화망 단말과 장비, 융합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의 시험·검증을 돕고 있다. 새 기술을 가진 기업이 통신망을 처음부터 짓지 않고도 제품을 시험해볼 수 있는 무대다.
AI 시대 공공기관의 소임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본다. 기술을 개발했다고 산업이 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연구실에서 성공한 기술이 공장과 물류센터에서도 작동하는지 검증해야 하고, 기업이 그것을 상품으로 빚어 시장에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기술과 시장 사이에는 '실증의 계곡'이 가로놓여 있다. 좋은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일수록 이 계곡을 건너기 어렵다. 산업현장과 닮은 시험 환경을 스스로 꾸리는 데 적잖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KCA가 테스트베드와 R&D를 한 줄로 꿰어 기업의 사업화를 거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네트워크가 똑똑해질수록 보안의 무게도 커진다. 공장과 로봇, 물류센터가 한 망으로 묶인 상황에서 통신망이 뚫리면 인터넷이 느려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생산라인이 멈추고 로봇과 자율주행 장비까지 흔들릴 수 있다.
KCA가 양자보안 기반 5G 특화망 기기 식별과 시험검증 기술 개발에 참여하는 것도 그래서다. 양자컴퓨터 시대가 오면 기존 암호체계의 안전성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양자내성암호(PQC) 같은 새 보안기술을 네트워크에 입히고 실제 환경에서 검증해 두어야 한다.
AI와 5G, 오픈랜과 양자보안은 저마다 다른 기술처럼 보인다. 그러나 산업현장에서는 한 몸으로 움직인다. AI가 판단하려면 데이터가, 데이터가 흐르려면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 그 네트워크에는 여러 기업의 장비가 물려 있어야 하고, 전체 체계는 안전해야 한다. AI가 두뇌라면 네트워크는 신경망이고, 보안은 면역체계다.
방송도 예외가 아니다. 방송과 통신, 전파는 한때 저마다의 울타리 안에 있었지만 AI 시대에 그 경계는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KCA는 AI·디지털 기반 방송프로그램 제작을 지원하며 기획과 제작, 유통 전반에 AI를 쓰도록 이끌고 있다.
생성형 AI는 자료조사와 영상·이미지 제작, 자막과 번역까지 제작 과정의 상당 부분을 가볍게 만든다. 작은 방송사와 제작사에는 특히 기회다. 예전 같으면 큰 제작비와 인력이 있어야 가능했던 콘텐츠를 작은 팀도 만들 수 있다. 번역과 더빙 비용까지 줄어든다면 국내 중소 제작사도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할 수 있다.
그렇다고 KCA의 AI 대전환을 방송 제작지원의 틀에 가둬서는 안 된다. 네트워크 AI와 5G 특화망, 오픈랜과 양자보안, 방송콘텐츠 AI는 한 장의 큰 그림 위에 놓여 있다. 'AI가 움직이는 산업의 기반을 까는 일'이다. AI 시대의 국가 인프라는 데이터센터만이 아니다. 제조공장과 물류센터, 농업시설과 방송 제작현장까지 수많은 공간이 AI 네트워크로 이어질 것이다.
이 원장이 '실증 환경과 R&D의 연계'를 앞세우는 것도 그래서다. 정부 연구비로 기술 하나를 만들고 끝내서는 안 된다. 기업이 그 기술을 실제 환경에서 시험하고 사업화해 해외시장까지 나아갈 길을 닦아야 한다. 전파를 관리하고 방송을 지원해온 KCA의 내일도 여기에 있다.
기술기업과 방송사, 통신사와 제조기업, 연구기관과 시장을 잇고, AI와 네트워크 기술이 산업현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여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AI 경쟁은 누가 더 뛰어난 모델을 만드느냐만으로 판가름 나지 않는다. 그 AI를 공장과 물류, 방송과 도시의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나라가 이긴다. 대한민국 산업에 'AI 신경망'을 까는 일, 이상훈 원장이 이끄는 KCA의 AI 대전환은 바로 거기서 시작되고 있다.
:이상훈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장:
이상훈 원장은 전파·방송·정보화·정보보호 분야 정책을 두루 다뤄온 ICT 행정 전문가다. 미래창조과학부 다자협력담당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보호기획과장, 우정사업본부 우정사업정보센터장, 중앙전파관리소장을 거쳐 2023년 11월 제8대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장에 취임했다.
방송미디어 산업 진흥과 전파 이용환경 조성은 물론 5G 특화망, 네트워크 AI, 오픈랜 등 차세대 ICT 기술의 실증과 산업 확산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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