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100투더퓨처] 음식 패러독스와 바람직한 건강장수 식단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우리는 매일 숫자와 함께 밥을 먹는다. 열량, 나트륨 함량, 하루 권장 단백질 그램 수, 탄수화물 비율…. 그런데 이 숫자들만 따져 보면 건강에 좋을 리 없는 밥상을 먹고도 오래,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 버터와 치즈를 즐기는 프랑스인, 고래와 물범을 먹던 그린란드의 이누이트, 고구마로 배를 채우던 오키나와의 노인, 짠 김치와 장을 매일 곁들이는 한국인이 그렇다. 영양학은 이런 현상에 '패러독스(paradox, 역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론과 현실이 어긋났다는 뜻이다.
 
음식을 쪼개 보는 눈: 분석적 영양학의 한계


인류는 수천 년 동안 경험으로 먹었고, 음식에 대한 지식은 곧 문화였다. 19세기 이후 화학자들은 음식을 분해해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이라는 '3대 영양소'로 환원했다. 20세기 초에는 흰쌀만 먹던 사람들의 각기병과 오랜 항해에 나선 선원들의 괴혈병 원인이 밝혀지면서 비타민이 발견됐고, 칼슘·철·요오드 같은 미네랄의 역할도 차례로 드러났다. 이 분석적 접근은 인류에게 큰 혜택을 안겼다. 각기병, 괴혈병, 펠라그라, 구루병 같은 결핍병이 빠르게 줄었고, 밀가루의 영양 강화와 소금의 요오드 첨가는 공중보건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남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영양학은 같은 방법으로 만성질환도 풀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심장병은 지방 탓, 고혈압은 소금 탓, 비만은 열량 탓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원인이 하나뿐인 결핍병에서는 통했던 방식이,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만성질환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영양소 권장 비율을 잣대로 대면 전통식단은 대부분 낙제점이었다. 정작 그 성적표에는 그 식단을 먹고 살아온 사람들의 건강 상태가 빠져 있었다. 계산과 현실 사이의 이 틈에서 '패러독스'라는 말이 등장했다. 특히 장수지역의 식단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지역마다 서로 다른 모습의 음식 패러독스가 하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음식 패러독스는 생활의 지혜이다

영양 이론과 지역 주민의 건강·장수 사이의 괴리가 처음 공식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지중해 식단 조사이다. 1950년대 앤설 키스의 '7개국 연구'에서 그리스 크레타 섬 사람들은 열량의 상당 부분을 지방에서 얻고도 관상동맥 질환 사망률이 가장 낮은 편이었다. 학계가 지방을 심혈관질환의 주범으로 지목하던 때였다. 자세히 뜯어보니 이들이 먹는 지방의 대부분은 올리브유의 단일불포화지방산이었고, 채소·콩류·통곡물·견과류·생선을 넉넉히 먹는 대신 붉은 고기는 적게 먹었다. 2013년 스페인의 대규모 임상시험(PREDIMED)은 지중해식 식단이 심혈관 사건을 실제로 줄인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지방은 나쁘다는 통설을 깨고, 어떤 지방은 오히려 건강에 이롭다는 이 역설을 '지중해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1970년대 덴마크의 뱅과 다이어버그는 그린란드 이누이트가 물범·고래·생선 같은 바다 동물을 대량으로 먹는데도 심근경색이 드물다는 사실을 보고하며, 이들에게 다가불포화지방산인 오메가-3가 심장을 지켜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그린란드 패러독스'다. 다만 2014년 캐나다 연구진은 당시 의료 기록이 부실했다고 지적했고, 오메가-3 캡슐을 먹인 임상시험도 생선을 직접 먹을 때만큼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해 논쟁이 이어졌다. 그래도 지방은 종류에 따라 해가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방을 다루는 식품산업이 새로 커지는 계기가 됐다.

오키나와는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지역으로 알려지면서 전통 식단이 큰 주목을 받았다. 오키나와 사람들의 탄수화물 섭취량은 압도적이었다.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라면 건강에 문제가 될 만했지만, 이들은 열량의 절반이 훨씬 넘는 몫을 섬유질이 많고 열량 밀도가 낮은 고구마에서 얻었다. 설탕 음료로 채운 탄수화물 65%와 고구마·채소·콩으로 채운 65%는 숫자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식사다. 탄수화물의 '질'이 달랐던 것이다. 주민들은 하루 종일 몸을 움직였고, 배를 80%만 채우는 습관과 끈끈한 공동체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던 지역에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식 식단과 자동차가 퍼지자 젊은 세대의 비만이 늘었고, 2000년에는 남성 평균수명이 일본 전국 26위까지 떨어진 이른바 '쇼크'가 찾아왔다. 식단이 바뀌자 장수지역의 자리도 흔들린 것이다. 이렇게 이론과 현실이 어긋난 모습을 '오키나와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한국의 사정은 또 다르다. 김치와 장 같은 발효식품 덕분에 나트륨 섭취가 세계보건기구(WHO) 권고량을 크게 웃돌지만, 허혈성 심장질환 사망률은 OECD 국가 가운데 낮은 편이다. 소금이 심혈관질환의 주범이라는 통념과 어긋나는 이런 현상을 '코리아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나물과 김치에 풍부한 칼륨이 나트륨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일을 돕기 때문에, 나트륨의 절대량보다 나트륨과 칼륨의 비율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설명이 힘을 얻는다. 비슷한 이야기가 일본에도 있다. 절임과 장류를 많이 먹어 온 일본인의 장수 역시 '일본 패러독스'라 부를 만하다. 채소와 생선 중심의 밥상과 생활습관이 그 폐해를 줄여 준 것으로 본다.

프랑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 세르주 르노는 포화지방이 많은 음식을 즐기는데도 심장병 사망률이 낮은 프랑스인의 비결로 레드와인을 지목했고, 덕분에 포도에 든 레스베라트롤이 큰 관심을 받았다. 포화지방의 폐해를 와인이 상쇄했다는 이 현상은 '프렌치 패러독스'로 불렸다. 이후 술 속의 생리활성 물질을 찾는 경쟁이 벌어져 맥주의 잔토휴몰, 위스키의 엘라그산 같은 성분이 잇따라 발견됐다. 그러나 술의 건강 효과는 사망 통계의 누락 가능성, 식습관 변화와 질병 발생 사이의 시차, 술에 든 유효 성분의 미미한 함량 탓에 실질적인 효과로 인정받지 못했다. 오히려 더 설득력 있는 해석은 프랑스인의 식생활
전체에서 나온다. 천천히 이어지는 식사, 적당한 양, 함께 먹는 식문화, 그리고 발효 유제품이 지닌 '식품 매트릭스(여러 성분이 한 덩어리로 어울려 만들어 내는 효과)'다. 

술에 대한 관심은 더 커졌다. 하루 한두 잔 마시는 사람의 사망률이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오히려 낮고, 그 이상 마시면 가파르게 치솟는 'J자 곡선'이 여러 연구에서 반복해 나타났으며, 장수지역 대부분이 술을 즐기는 편이라는 보고도 이어졌다. 적당한 음주의 긍정적 효과가 강조됐지만, 적당히 마시는 사람들이 대개 소득이 높고 교육 수준도 높다는 점이 착시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함께 지적됐다. 결국 2018년 세계질병부담 연구는 '안전한 음주량은 없다'고 결론지었고, 우리나라 국민 암예방 수칙도 '하루 한두 잔의 소량 음주도 피하기'로 바뀌었다. 특히 알코올 분해 효소가 선천적으로 약한 한국인은 식도암과 간질환
위험이 더 크다는 경고가 따른다.

그러니 사르데냐 노인의 와인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 와인은 가족과 함께 천천히 나누는 식사의 일부였고, 그들에게는 활발한 신체 활동과 공동체, 채소 중심의 식사가 몸에 배어 있었다. 결론은 분명하다. 건강을 위해 술을 시작할 이유는 없고, 마신다면 적을수록 좋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셀렉션에서 출간한 『술 패러독스』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처럼 여러 패러독스가 드러낸 것은 분석적 접근의 분명한 한계다. 첫째, 사람은 영양소가 아니라 음식을 먹는다. 둘째, 무엇인가를 줄이면 반드시 다른 무엇으로 채워진다. 1980~90년대 미국의 저지방 열풍은 지방 대신 설탕을 넣은 과자를 쏟아냈고, 비만은 오히려 늘었다. 셋째, 식단은 생활과 떼어 놓을 수 없다. 넷째, 한 가지 성분만 뽑아내면 효과가 사라지거나 뒤집힌다. 1990년대 흡연자에게 베타카로틴 보충제를 먹인 임상시험에서는 오히려 폐암이 늘었다. 다섯째, 관찰만으로는 원인을 알 수 없다. 비교 집단의 구성이나 기록의 부실이 역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패러독스는 기존 이론을 뒤엎는 증거라기보다, 지나치게 단순한 모델의 약점을 드러내는 질문이다. 영양소라는 현미경은 필요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밥상 전체를 볼 수 없다.
 
바람직한 건강장수 식단의 원칙


16세기 의사 파라켈수스는 "독과 약을 가르는 것은 오직 양"이라고 말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물도 지나치게 마시면 목숨이 위험하고, 소금은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많으면 혈관과 위를 해친다. 음식을 '좋다'와 '나쁘다'로 가르는 이분법은 대개 양과 맥락을 빠뜨린 말이다. 슈퍼푸드를 맹신하고 특정 영양소를 악마화하는 일이 반복되는 지금, 이 원칙은 가장 오래되었지만 가장 유효한 식사 법칙이다. 음식은 양만큼 질도 중요하다. 지방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올리브유, 견과류, 등푸른생선의 지방은 오히려 이롭고, 경계할 것은 가공육·튀김·과자 같은 가공식품이다. 단백질도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붉은 고기와 가공육을 많이 먹으면 대장암과 심혈관질환 위험이 커지므로, 양 못지않게 어디서 왔는지가 중요하다. 탄수화물은 비율보다 질이 핵심이다. 통곡물·채소·콩·덩이줄기의 탄수화물은 섬유질과 미량 영양소를 함께 주지만, 흰 밀가루와 설탕은 그렇지 않다. 비타민도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특히 지용성 비타민은 몸에 쌓여 독이 될 수 있어, 고용량 보충이 오히려 해가 된 사례도 있다. 

세계의 밥상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렇다. 사람은 영양소가 아니라 음식을 먹고, 그 음식은 다시 하루의 식사가 되어 특정한 생활 방식 속에서 완성된다. 영양학의 분석적 방법은 결핍병을 정복했지만, 만성질환과 장수 앞에서는 현미경을 내려놓고 밥상 전체를 바라보게 한다. 전통식단에서 배워야 할 것은 식단 목록 뿐 아니라 그 식단이 오래 지속될 수 있게 만든 원리다. 적게 먹되 제대로 먹고, 식물을 중심에 두되 균형을 지키며, 다양하고 규칙적이고 절제 있게 먹는 것. 그리고 그 밥상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몸과, 함께 나눌 사람들 곁에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수 식단이란 특정한 과학 원리로 계산해 낸 식단이 아니라, 장수지역 사람들이 오래 살아오면서 전통적으로 먹어 온 식단이라고 정의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실제로 우리 할머니들은 영양학이 수십 년의 연구 끝에 도달한 결론을 이미 알고 계셨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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