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드디어 열린 美 시장, K-원전 실력으로 답해야

원전 종주국 미국에서 한국형 원전 APR1400을 건설할 수 있는 길이 확보됐다. 다만 문이 열렸다는 사실만으로 성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번 기회를 실제 수주와 산업 경쟁력 확대로 연결하는 일이다.

한·미 양국은 대미투자펀드 2000억 달러 가운데 최대 1200억 달러를 활용해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를 건설하는 내용의 '한·미 원전 프레임워크'에 합의했다. 한국형 APR1400 2기와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6기가 대상이다. 특히 지난해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체결한 타협협정(SA)을 개정해 APR1400의 미국 건설이 가능해진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동안 한국형 원전의 미국 진출을 가로막았던 기술사용료와 지식재산권 문제에도 변화의 계기가 마련됐다.

상징성도 크다. 1978년 웨스팅하우스 기술로 고리 1호기를 건설한 지 약 50년 만에 한국 기업이 웨스팅하우스의 파트너로 미국 원전 건설에 참여하게 된다. AP1000 6기에는 한국 시공사와 기자재 업체의 참여도 예정돼 있다. APR1400의 미국 건설은 국내 원전 생태계의 공급망과 시공 역량을 미국 현지에서 입증할 기회다. 미국에서 확보한 레퍼런스는 향후 제3국 원전시장에서도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웨스팅하우스와의 관계를 경쟁에서 협력으로 전환하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정부는 한전·한수원과 국내 민간기업이 웨스팅하우스 지분 5~10%를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분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기술과 공급망, 해외 사업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전략을 마련하는 일이다. 웨스팅하우스가 영향력을 가진 미국과 서유럽 등 제3국 시장까지 고려한다면 단순한 재무적 투자가 아니라 장기적인 수출 기반을 확보하는 사업적 판단이 필요하다.

UAE 바라카 원전 전경 사진한국전력
UAE 바라카 원전 전경. [사진=한국전력]

이번 협력은 국내 원전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원전은 설계와 건설만으로 끝나는 산업이 아니다. 원자로와 터빈, 발전기, 계측제어, 소재·부품·장비, 유지보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업이 참여하는 대표적인 산업 생태계다. 미국 원전시장에 한국 기업의 참여가 확대되면 국내 중소·중견 원전기업의 수출 기반을 넓히고 고용과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넘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미국 원전사업은 막대한 투자비와 긴 공사 기간, 공사비 초과 위험이 뒤따른다. 전체 사업비 1200억 달러 가운데 200억 달러를 예비비로 책정한 것도 이런 위험을 고려한 조치다. 지반 조건과 냉각수 확보, 전력망 연결, 수요처 등 개별 프로젝트의 여건에 따라 경제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프레임워크 합의와 개별 사업의 최종 투자는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이제 냉정하게 사업성을 따져야 한다. 정치적 상징성만 앞세워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떠안을 수는 없다. 반대로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새로운 시장 진출을 주저해서도 안 된다. 미국이 원전 확대를 서두르는 지금 한국이 가진 설계·시공·공급망 역량을 협상력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한국 원전산업의 과제는 분명하다. 미국의 원전 확대 흐름 속에서 단순한 시공·기자재 공급자로 머물 것인지, 설계부터 건설·운영·공급망까지 참여하는 글로벌 원전 파트너로 자리 잡을 것인지가 달려 있다. 철저한 사업성 검증과 원가 경쟁력, 공기 준수 능력, 금융 조달 역량을 앞세워 한국형 원전의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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