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을 다니다 보면 국적이나 국가를 선택해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 국제전시장 출입 등록부터 항공권과 호텔 예약, 각종 글로벌 플랫폼과 애플리케이션 가입까지 여러 절차에서 국가 선택란을 마주한다. 이름과 연락처를 입력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순간, 정작 대한민국을 찾는 데 손이 멈춘다.
South Korea라면 ‘S’, Republic of Korea라면 ‘R’, Korea라면 ‘K’를 찾아야 한다. 해당 플랫폼이 어떤 명칭을 사용하는지 알 수 없으니 국가와 지역이 길게 나열된 목록을 위아래로 훑게 된다. S에서 찾다가 R로 돌아가고, 다시 K를 확인한다. 검색창조차 없는 화면에서는 이런 탐색을 몇 차례나 반복해야 한다.
한 번에 몇 초, 길어야 몇십 초가 걸리는 일이다. 그러나 출장 때마다, 등록할 때마다 반복되면 그 시간도 쌓인다. 전시장 입구에서 서둘러 등록을 마쳐야 하거나 낯선 공항에서 휴대전화로 예약 정보를 입력할 때는 그 짧은 시간마저 길게 느껴진다. 해외를 오가는 많은 국민이 한 번쯤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공식 영문명은 ‘Republic of Korea’다. 국제표준화기구(ISO)의 국가 코드 체계인 ISO 3166에서도 대한민국은 KR과 KOR 등의 코드로 식별된다. 그러나 국가를 식별하는 코드와 이용자에게 보여주는 이름은 별개의 문제다. 같은 국가 코드를 사용하더라도 화면에 어떤 명칭을 표시하고, 어느 알파벳 아래에 배치하며, 어떤 검색어에 반응하도록 설계할지는 플랫폼마다 다르다. 국제표준이 존재한다고 해서 이용자의 불편까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 브랜딩에서도 이름의 일관성은 중요한 원칙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로고와 슬로건을 만들고, 홍보 영상과 글로벌 캠페인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세계인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예약 화면과 등록 양식에서 대한민국을 얼마나 쉽게 찾을 수 있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가명은 홍보물에 등장하는 상징인 동시에 디지털 공간에서 읽히고, 검색되고, 선택되는 실질적인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플랫폼에 하나의 영문 표기만 강제하자는 뜻은 아니다. 서비스마다 이용자의 언어와 문화적 환경이 다르고, 익숙하게 사용하는 국가명도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표시 명칭의 일관성을 높이면서도 서로 다른 이름으로 검색했을 때 동일한 국가에 도달하도록 설계하는 일이다. 국가명 표기를 통일하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검색 과정의 불편은 기술적으로 먼저 줄일 수 있다.
외교부를 비롯한 관계기관이 주요 국제행사 주최기관과 글로벌 플랫폼 운영사에 대한민국의 국가명 표기와 검색에 관한 공통 가이드라인을 제안하면 어떨까. 공식 영문명과 국제표준 국가 코드를 안내하고, 널리 사용되는 다른 명칭도 검색어로 연결하도록 권고하는 방식이다. 화면에 표시되는 이름과 실제 검색 기능을 함께 고려해야 현장에서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출발점은 국제행사 등록 시스템이 될 수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주최하거나 지원하는 전시회, 국제회의, 수출상담회부터 국가 선택 항목을 점검하는 것이다. 시스템 발주 단계에서 국가명 검색 기능과 대체 명칭 처리를 필수 요구사항으로 반영하고, 휴대전화와 무인 단말기에서도 손쉽게 국가를 찾을 수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국내에서 축적한 개선 사례는 해외 주최기관과 글로벌 플랫폼에 변화를 요청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플랫폼 운영자들에게도 제안하고 싶다. 긴 국가 목록에는 검색창을 마련해달라. Republic of Korea와 South Korea 중 어느 이름을 입력하더라도 대한민국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Korea로 검색할 경우에는 남북한을 명확하게 구분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해달라. 기술적으로 거창한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용자가 수많은 국가명을 일일이 훑어야 하는 수고를 덜어달라는 것이다.
국가 선택란은 디지털 화면의 작은 구성 요소에 불과해 보인다. 그러나 그 작은 화면에도 이용자의 시간을 얼마나 존중하는지가 드러난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불편을 방치하기 쉽지만, 운영자가 놓친 몇 초를 수많은 이용자가 반복해서 부담한다면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서비스의 품질은 화려한 기술만이 아니라 이러한 작은 불편을 얼마나 세심하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앞으로 출입국과 여행, 비즈니스와 국제교류의 절차는 더욱 디지털화될 것이다. 사람이 안내하던 자리를 온라인 양식과 무인 단말기가 대신할수록 화면의 작은 불편은 이용자가 직접 감당해야 하는 장벽이 된다. 인공지능(AI)이 일상과 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시대라지만, 정작 이용자가 자신의 나라를 찾기 위해 국가 목록을 몇 차례씩 뒤져야 한다면 디지털 혁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대한민국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거창한 국가사업이 아니다. 디지털 전환의 기본을 바로 세우고, 사람의 시간을 존중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을 선택하는 데 허비하던 시간을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되는 데 쓸 수 있기를 바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