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을 대표하는 축제가 또다시 방향 전환을 앞두고 있다. 1967년 시작된 공업축제는 시민대축제와 처용문화제로 이어졌다가 2023년 35년 만에 다시 부활했지만, 올해 네 번째 행사를 끝으로 또 새로운 대표축제로의 전환이 검토되고 있다. 이름과 형식은 달라졌지만 지난 60년 동안 울산을 대표할 축제를 둘러싼 고민은 반복돼 왔다.
최근 시민배심원단 평가에서 울산공업축제가 폐지 의견 사업에 포함되면서 변화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시민 99명이 시비 1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84개 축제·행사를 평가한 결과 울산공업축제를 포함한 20개 사업에 폐지 의견을 냈고, 울산시는 이를 2027년도 예산 편성에 반영할 방침이다.
김상욱 울산시장도 민선 9기 출범 과정에서 공업축제의 지속 여부와 처용문화제 복원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어, 울산시의 대표축제 재편 논의는 새로운 선택의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논의의 핵심은 공업축제를 유지할지, 처용문화제를 되살릴지에만 있지 않다. 시정 변화 때마다 대표축제의 방향이 다시 설정되는 구조에서 울산만의 축제 브랜드와 도시의 이야기를 어떻게 장기간 축적할 것인지가 더 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울산공업축제는 국가 산업화를 상징하는 도시로 울산이 급성장하던 1967년 시작됐다. 공업도시 울산의 성장과 기업, 근로자, 시민의 결속을 보여주는 행사로 자리 잡았지만 1987년 제20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고, 이후 대표축제의 중심은 시민대축제와 처용문화제 등으로 이동했다.
처용문화제는 처용이라는 지역 고유의 문화자산을 바탕으로 전통문화와 공연, 국제교류를 결합하며 울산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시민 참여와 콘텐츠 차별화, 축제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졌다.
대표축제의 중심은 2023년 다시 산업으로 돌아왔다. 민선 8기 울산시는 산업수도의 역사와 시민 자긍심을 되살리겠다는 취지로 공업축제를 35년 만에 부활시켰고, 이후 미래산업과 인공지능, 지역 역사·문화, 시민 참여를 함께 담는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충분히 축적되기도 전에 울산공업축제는 또다시 새로운 대표축제로의 전환을 앞두게 됐다. 공업과 처용 가운데 어느 이름이 더 적절하느냐를 넘어, 대표축제가 시정 방향에 따라 다시 설계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과제로 남는다.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는 1810년 왕세자의 결혼을 기념한 경마에서 출발했다. 이후 맥주천막과 놀이시설, 공연과 관광 프로그램이 더해졌지만 옥토버페스트라는 이름과 장소, 바이에른의 지역 정체성은 2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에든버러 역시 1947년 국제페스티벌을 시작으로 공연예술과 영화·도서 등 다양한 축제를 확장하며 '페스티벌 도시' 이미지를 만들었다. 시대 변화에 맞춰 콘텐츠와 장르는 달라졌지만 축제를 도시의 핵심 문화자산으로 축적한다는 방향은 유지됐다.
국내에서도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유등',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탈과 탈춤'이라는 지역문화 자산을 중심으로 프로그램과 국제교류를 확대해왔다. 대표축제는 운영방식을 바꾸면서도 지역을 상징하는 핵심 소재와 정체성을 장기간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울산의 현재 논의와 차이를 보인다.
울산의 고민이 더 복잡한 이유는 대표축제로 활용할 소재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울산에는 자동차·조선·석유화학 산업과 공업탑, 국가산업단지, 산업노동자의 역사가 있고, 동시에 처용설화와 개운포, 반구천 암각화, 고래문화, 태화강이라는 역사·문화·자연 자원도 갖고 있다.
최근 지역 토론회에서도 공업축제와 처용문화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보다 울산이 가진 여러 자원을 어떤 중심 서사로 묶어낼 것인지가 먼저 논의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김구한 한국해양문화연구원장은 공업축제와 처용문화제를 놓고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식의 접근보다 울산 대표축제를 어떤 원칙과 구조로 만들어갈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취지로 강조했다. 축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시민과 지역 예술인이 기획과 운영에 참여하고, 축제가 지역 문화생태계와 연결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업과 역사, 문화와 자연을 어느 하나의 영역으로 분리하기보다 울산이 가진 여러 층위의 이야기를 하나의 대표 콘텐츠로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축제의 성과를 한 해의 관람객 수나 행사 흥행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특정 시기에 해당 도시를 방문해야 할 이유가 반복적으로 만들어지고, 지역 상권과 시민, 예술인이 해마다 참여하면서 경험을 축적해야 비로소 도시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울산 역시 과거 처용문화제를 세계적인 문화축제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2023년에는 공업축제를 부활시키며 산업수도의 정체성을 담은 대표축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그러나 대표축제의 틀이 몇 년 단위로 다시 설계된다면 성과와 한계를 충분히 평가하고 콘텐츠를 발전시킬 시간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시민배심원단의 폐지 의견은 예산 효율성과 사업 필요성을 점검하는 중요한 판단 자료가 될 수 있다. 다만 단년도 행사평가와 한 도시의 대표축제를 어떤 방향으로 장기간 육성할 것인지는 구분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지역 문화계에서는 새로운 축제의 명칭을 정하기에 앞서 운영구조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축제 기획을 누가 책임질 것인지, 시민과 지역 예술인은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것인지, 장기간 이어갈 핵심 콘텐츠와 중장기 목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울산은 다시 대표축제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 놓였다.
공업축제를 대신해 처용문화제가 다시 중심에 설 수도 있고, 산업과 역사·문화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축제가 등장할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새로운 이름을 정하는 것만으로 대표축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뮌헨과 에든버러, 진주와 안동의 사례는 지역을 설명하는 핵심 이야기는 유지하면서 시대 변화에 맞춰 콘텐츠와 운영방식을 바꿔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울산 역시 산업과 노동의 역사, 처용과 개운포, 고래와 반구천 암각화, 태화강까지 다른 도시가 갖기 어려운 자산을 이미 갖고 있다. 앞으로 만들어질 대표축제 역시 어떤 이름을 선택하느냐보다 울산을 설명할 중심 이야기를 얼마나 오래 축적하고 시민의 축제로 정착시킬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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