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초격차'를 파괴하는 '초가격'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명품을 외치지만, 선택은 가성비다. 고가 브랜드가 입에 많이 오르내리긴 하지만, 사실 저가 브랜드가 시장을 압도한다. SNS상에 샤넬이 회자하지만, 옷장엔 유니클로가 가득하다. 슈퍼카는 로망일 뿐, 도로에는 보통의 자동차들이 꽉 차 있다. 2025년 페라리(Ferrari N.V)의 매출액은 약 10조원에 달하고, 도요타(Toyota)는 약 440조원을 기록했다.
 
세계가 '초격차'를 외칠 때, ‘초가격’ 전략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한 중국 기업의 사례가 상당하다. AI와 반도체와 같은 미래 산업도 중국 기업이 넘어설 것인지에 대한 경고음이 울려 퍼지고 있다. ‘초가격’ 전략으로 시장을 장악한 중국 기업의 사례들을 진중히 진단하고, 한국 경제의 산업·기술 전략을 재조정해야 할 시점이다.
 
시장을 삼킨 중국의 ‘초가격’ 전략


자율주행 기술의 서막을 연 기업은 미국의 벨로다인(Velodyne)이다. 자율주행차의 핵심기술인 라이다를 최초로 개발했고, 7만5000달러에 달하는 라이다는 웨이모 등의 시범 차량에 제한적으로 쓰였다. 이후 벨로다인은 가격 혁신을 통해 모델 단가를 8000달러까지 떨어뜨렸고, 라이다의 초기 대중화를 이끌었다. 중국계 기업인 헤사이(Hesai)와 로보센서(RoboSense) 등은 제조원가를 극적으로 낮추어 200달러 수준으로 라이다를 양산했다. 벨로다인은 사라졌고, 아우스터(Ouster)에 흡수합병 되었다.
 
태양광 산업을 호령하던 독일의 큐셀(Q-Cells)은 중국 기업에 잠식당한 대표적인 사례다. 큐셀은 고효율 태양전지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2007년 세계 태양전지 1위에 올랐다. ‘Made in Germany’의 위상으로 프리미엄 고효율 셀과 모듈을 앞세워 태양광 시장의 기술 표준을 주도했다. 중국 정부는 태양광을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했다. 상하이 선택, 인리, 징코솔라 등의 태양광 기업들은 전체 밸류체인을 대규모 공장 단지 내에 수직 계열화하여 제조원가를 극적으로 낮췄다. 태양광 패널 가격은 몇 년 만에 70~80% 폭락했다. 프리미엄 기술 위주였던 큐셀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2012년 파산에 이르렀고, 한화그룹이 인수해 한화큐셀로 재편했다. 유럽의 태양광 제조업 생태계는 붕괴되고 말았다.
 
철강, 조선, 디스플레이, 배터리에 이르기까지 기존 강자들이 중국 기업에 시장을 내준 사례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1990년대 포스코는 고품질 자동차 강판 등 프리미엄 철강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사로 부상했지만, 중국의 바오우강철은 자국 내 인프라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대대적인 설비 투자를 감행했고, 글로벌 철강 생산량의 약 55%까지 장악하고 있다. 2000년대 한국이 세계 조선업의 1위 자리를 차지했었지만, 2020년대 들어 중국에 자리를 내주었다. 2010년대 초반까지 삼성과 LG가 독점했던 디스플레이 시장을 중국의 BOE, CSOT 등에 원가 경쟁에 밀려 LCD 사업에서 전면 철수하고 OLED로 전환했다. 한국의 3대 배터리 기업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은 높은 에너지 밀도와 주행거리가 긴 삼원계 배터리를 주력으로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을 독점했지만, 중국의 CATL과 BYD가 30% 이상 저렴한 LFP 배터리로 시장을 침투했다. 현재는 테슬라, 현대차·기아, 벤츠, BMW, 폭스바겐 등 글로벌 메이저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에 중국산 LFP 배터리를 대거 탑재하기 시작했다.
 
중국 반도체, 한국을 넘어설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평가받는 미국은 중국에 AI 패권을 내어줄까? AI 모델 생태계도 이미 변화하고 있다. 2024년 이래 중국 AI 모델이 급격히 부상하고, 토큰 점유율은 2025년 중반부터 미국을 넘어섰다. 2026년 9월 오픈라우터(OpenRouter) AI 모델 토큰 점유율은 중국이 62%, 미국이 30%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AI 모델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생태계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2026년 10월 딥시크(DeepSeek)가 출시한 새 AI 모델은 성능 면에서 미국 AI 모델들을 맹추격하고 있으며, 미국 클로드의 42분의 1 가격으로 시장을 침투하고 있다. 미국의 AI 서비스는 막대한 자본 지출(CAPEX)을 통해 컴퓨팅 파워를 만들어내는 데 반해, 중국은 ‘가성비’를 앞세워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의 AI 모델을 비교적 저렴하게 이용하고, 필요에 따라 미국 AI 모델을 혼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미국 vs 중국 AI 모델 토큰 점유율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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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OpenRouter, 
주 : OpenRouter는 AI 모델 게이트웨이다. 즉 GPT, Claude, Gemini, DeepSeek 등 다양한 AI 모델을 하나의 API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서비스다. 서로 다른 회사의 AI 모델을 이용하려면 각각 계약하고 각각 연동해야 했는데, OpenRouter는 하나의 키로 여러 모델에 접근하고, 종량제로 결제할 수 있다. OpenRouter가 AI 생태계에서 중요한 인프라 플레이어로 부상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은 반도체로 향한다. 창신메모리(CXMT)는 중국 반도체 굴기의 핵심 축이다. 중국은 자국에서의 메모리반도체 수요는 자국 내에서 스스로 조달하겠다는 의지다. 미래 산업에 천문학적인 양의 메모리반도체가 필요한데, 언제까지 한국 수입에만 의존하겠는가? 창신메모리는 지방정부(허페이시 국유자본)와 중앙정부(중국 국가반도체펀드), 알리바바 그룹 등의 대주주로 구성된 민관 혼합 지배 구조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이 자사 클라우드나 AI데이터센터용 D램을 구매하는 전략적 구매자로서 창신메모리와 긴밀한 공급망 관계를 맺고 있다. 2026년 7월 상하이증권거래소 커촹반에 공식 상장하며, 579억 위안 규모를 공모했고, 중국 대장주로 자리 잡았다. 저사양 반도체를 중심으로 중국 내 자체 수요를 충당하며 시장을 침투하고 있으며, 2024년 1분기 2%의 점유율에 머물던 창신메모리는 2026년 2분기 10%까지 추격했다. 세계 DRAM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2024년 1분기 75%에서 2026년 2분기 63%로 밀려나고 있다.
 
 
세계 DRAM 반도체 기업별 시장점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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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Counterpoint Research]
 

창신메모리는 범용 D램 양산과 가격 파괴 공세를 펼칠 것이다. 서방의 EUV 노광 장비 제재를 뚫고 17나노급 DDR5 D램 수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에이서(Acer), 에이수스(ASUS) 등 글로벌 PC 제조사들의 보급형 라인업에 채택을 확정 지으며 범용 시장 잠식을 본격화하고 있다. HBM에도 진입할 계획이다. HBM3를 연내 생산하고, 2027년 내 본격 양산할 계획이다. 화웨이, 알리바바, 텐센트 등 빅테크 기업들과 ‘Self-contained(완전 자급형) AI 밸류체인’을 완성하고자 한다. 애플은 미국 정치권을 설득해 중국산 메모리 반도체를 쓸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경영과제를 설정했고, 테슬라와 스페이스X도 메모리 병목현상을 이겨내기 위해 중국산 반도체를 도입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창신메모리의 2026년 3분기 매출액은 1년 만에 약 564% 급증할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의 초가격 전략에 대한 한국의 대응


자아도취는 금물이다. 방심은 추격을 용인하는 행위다. ‘토끼와 거북이’ 이솝 우화는 말해준다. 토끼가 거북이에게 역전된 이유는 방심이다. 국내 수많은 전문가와 언론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메모리 기술은 중국의 그것을 몇 년이나 앞서있다.” “누가 중국 메모리를 쓰겠나?”라고 말이다. 한국은 방심하고 있다. 중국 메모리가 한국을 넘어설 수 있다고 주장하면, ‘친중이냐?’라는 평가를 받기까지 한다. 사실 언제든지 중국이 추격해 올 수 있음을 가정하고, 대응책을 고민해야 한다.
 
중국의 초가격 전략은 초격차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 아무리 독보적인 기술을 먼저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했더라도, 후발주자인 중국 기업들이 '정부 지원 + 거대 공급망 + 양산화'를 통한 초저가 공세를 펼칠 경우, 기존의 기술 선도 기업은 원가 경쟁력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역사를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초크포인트(급소)에 해당하는 기술을 선점해야 한다. 밸류체인 내에서 한국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선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이 중국과 차별화할 수 있는 미래 기술과 시장을 선별하고, R&D와 인력 양성을 집중하는 산업 전략이 필요하다. 이른바 초크포인트 테크(Chockpoint Tech)를 찾아야 할 때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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