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 궁녀 가운데 왕소군이라고 있었다. 명문가의 딸이기도 한 왕소군은 양귀비(당나라), 서시(춘추시대), 초선(삼국시대) 등과 함께 중국 역사를 장식하는 4대 미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절세미인이었다. 원제의 사위가 될 것을 약속한 흉노족 선우왕이 연회에서 왕소군을 보고 한 눈에 반해 원제에게 요청을 했고 원제가 할 수 없이 승낙하게 된다. 원제는 평소 궁중화가를 통해 궁녀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궁녀를 골라 시중을 들겠했다. 그런데 왕소군은 실제와는 달리 초상화에서는 추녀로 그려져 있어서 원제가 그 동안 몰랐던 것이다. 원제는 왕소군에게 사흘밤낮을 자신과 함께 지내게 한 뒤 선우왕에게 시집을 보내게 된다.
이후 당나라 측천무후시대에 이르러 좌사(左史)란 벼슬을 지낸 동방규(東方叫)란 이가 왕소궁을 안타까워 하는 시를 읊었다. 그 속에 나오는 얘기가 바로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은 왔지만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는 역설적인 이 표현은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다. 변화가 필요함에도 그렇지 않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나아진 것이 전혀 없다는 말로도 쓰인다.
요즘 부동산시장에도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무엇보다 시장의 지표가 될 수 있는 거래량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국토해양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전국 아파트 거래량은 6만1974가구로 지난해 12월 8만1961가구에 비해 크게 줄었다. 금융위기 영향과 계절적인 비수기까지 겹치면서 거래가 급감했던 작년 1월(4만9085가구)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서울을 비롯한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이라고 별반 나은 것이 없다. 1월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은 2만2527가구로 작년 9월(4만3494가구)에 비해서는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신규분양주택이나 미분양 아파트를 취득하는 경우에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래가 급격히 위축된 것이다.
분양시장도 마찬가지다. 2월말 현재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15만가구에 육박하고 있다. 준공후에도 미분양으로 남아 있는 '악성' 물량도 5만가구를 넘어선 상태다. 신규 분양시장은 '보금자리주택'에 밀려 관심 밖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또 입주가 이뤄져야 한 새 아파트 단지는 여전히 불꺼진 집으로 넘쳐난다.
건설업계에 부도설이 나도는 것도 신규 분양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있고 분양계약자들의 잔금 납부는 예상만큼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본격적인 대세 하락기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소비자들의 심리가 극도로 얼어있다는 얘기다. 시장에 거래가 없으니 곳곳에서 아우성만 들린다. 한 마디로 '시장무거래(市場無去來)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은 양도세 감면 등의 대책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어찌보면 맞는 얘기다. 일시적 미봉책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1년 동안 경험도 했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때도 아니다. '6.2지방선거'를 겨냥한 일회성 선심성 정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거래가 살아나야 한다. 거래가 없는 시장은 존재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아주경제 김영배 기자 young@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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