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일본 학습론'을 다시 꺼내들었다. 일본기업들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삼성전자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 시점에서 나온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7일 삼성그룹의 말을 들어보면 이 회장은 6일 저녁 서울 한남동에 있는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차기 일본 게이단렌 회장으로 내정된 요네쿠라 히로마사 스미토모화학 회장에게 "삼성이 최근 몇 년간 좋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일본기업으로부터는 더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기업은 서로 협력할 분야가 많다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이날 요네쿠라 회장과의 회동은 이 회장의 경영복귀 후 첫 번째 공식 활동이었다.
이 회장의 이 같은 언급은 지난 1월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를 둘러보는 자리에서 일본 기업과 관련해 "겁은 안 난다. 겁은 안 나도 신경은 써야한다. 기초와 디자인에서 우리가 앞섰으니, 한번 앞선 것은 뒤쫓아 오려면 참 힘들다"고 한 말과 맥락이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6년 가전제품의 대표주자인 TV부문에서 일본의 소니를 앞지르면서, 추격자의 위치에서 시장 리더로 올라섰다. 일본기업을 벤치마킹했던 삼성전자가 시장 개척자로의 지위를 갖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2020비전'을 통해 매출 4000억달러로 IT업계 압도적 1위와 글로벌 10대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공언한 것도 일본기업을 따돌렸다는 판단에서 가능했다.
그래서 이 회장의 '일본 학습론'을 꺼내 든 배경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삼성그룹은 국경을 넘어선 기업들 간의 협력에 방점을 찍는다. 비단 일본기업에서 배우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 장점을 공유하자는 차원의 언급으로 보는 것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회장님이 3국(한․일․중) 협력을 얘기하고 민간이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며 "요네쿠라 회장이 국제통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기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회장은 요네쿠라 회장에게 "일본기업에게 더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 하기에 앞서, "한․일․중 동북아 3국의 제조능력이 뛰어나고 무한한 시장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동북가 3개국의 경제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일본기업들이 삼성전자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도 이 회장의 '일본 학습론' 거론 배경의 하나로 제시된다. 최근 파나소닉, 소니와 같은 일본기업들은 엔화강세 기조가 바뀌는 상황에서 전열을 다시 갖추고 3D TV 시장 공세에 나섰다. 가장 큰 TV시장인 미국에서 파나소닉은 삼성전자에 앞서 소매 유통점에 3D TV를 전시판매하는 등 반전의 기회를 찾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호성 수석연구원은 "금융위기 이후 일본기업들이 고품질과 고가격을 기본으로 한 세크먼트에서 중품질과 중가격 중심의 하위 세그먼트로 제품을 이동시키고 있다"며 "신흥국 시장에 대한 전략을 변화로 앞으로 한국제품과의 직접적인 경쟁이 심화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아주경제 김지성 기자 lazyha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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