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성 부국장 겸 건설부동산부 부장 |
#2.미국 대공황기인 1928년 증권가의 대부인 아놀드 로드스타인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다. 거품경제가 극심하던 당시, 로드스타인은 뉴욕과 보스톤 등 대도시에서 한탕을 노리는 투자꾼을 대상으로 주식방을 거느렸다. 주식방은 주식 가격의 10%만 있으면 누구나 거래가 가능한 도박장과 같았다. 보유현금의 10배를 베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최근 A사는 수도권 노른자위에서 3순위 청약을 끝내기 무섭게 10%의 계약금에 중도금 전액 무이자라는 특별할인조건을 제시, 투자자에게 '러브 콜'을 보냈다. 민간은 연내 수도권에서 15만 가구에 가까운 크고 작은 아파트를 분양할 예정이다. 그러나 A사와 같이 절반가량의 계약 성공을 장담하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참패다.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충성도가 높은 데다 입지도 괜찮은 곳이어서 나름대로 자신은 했는데..." A건설사 임원의 말꼬리가 힘이 없었다. 건설사의 요즘 유행어는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다. PF 대출이자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에서 분양을 마냥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룰렛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게 주택건설사의 현실이다.
수도권 미분양시장의 판촉 세일은 예전과 달리 파격적이다. 분양 현장은 계약금 10%을 포함한 '잔여분 특별 할인'이 열풍이다. 사업을 진행시키려면 한 가구라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자존심을 따질 경황이 없다. '죽사리'의 기로에서 그나마 총구를 맞댄 머리에 브랜드라는 방탄이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어찌보면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10%의 현금으로 배팅, 투기를 조장했던 미국 공황기 직전에 로드스타인의 주식방과 다름이 없다.
국내 분양시장의 룰렛게임은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의 민간 분양분부터 증가세다. 브랜드에 대한 자신감은 과도한 분양가로 이어졌다. 방심하다가 이미 '총맞은' 기업도 있다. 부도 직전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중견 기업은 총성의 서곡일 뿐이다. 현재 전국 20만 가구가 넘는 업계 추산의 미분양 사업장은 룰렛 게임장이다. 특히 '주식방'처럼 10% 이하의 계약금을 받은 미분양 사업장은 미분양이 장기화할 경우 어김없는 총받이다.
분양시장의 룰렛게임은 날로 잔인하고 혹독하다.금융권은 80조원이 넘는 PF대출의 상환에 고삐를 쥘 태세다. 실수요자는 민간분양시장에서 멀어져 간다. 정부의 보금자리주택단지의 매력 때문이다. 일부 실수요자는 부동산 버블을 우려, 비싼 민간 분양시장에 등을 돌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강남에서 미분양사태다. 서울시의 수억짜리 시프트(장기전세주택)에는 줄을 섰다. 이 모든 룰렛게임은 정부가 심판관이라는 데 심각성이 크다.
가계도 분양시장 룰렛게임의 후유증이 몰아칠 전망이다. 우리 가계에 보유재산의 80%는 부동산이다. 선진 외국이 40~50%인 점을 감안해 볼 때 과도하다. 게다가 이런 가계는 현재 금융권에 700조원이 넘는 빚이 있다. 사상 최고치다. 가계가 총알이 난무하는 룰렛게임에서 안전지대일 수 없는 이유다. 소비의 주체인 가계 파탄을 막는 게 급선무다. 그래야 소비도 있고 경제 성장도 있다.
민간 시장에 특혜를 주라는 얘기가 아니다.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라는 얘기다.
아놀드 로드스타인 죽어갈 때 측근이 물었다. "누가 당신을 쐈나요?". 그는 남긴 말이 명언이다. "만약 다시 살아난다면, 나라도 나를 죽여 버렸을 거야"
수원수구하지 말자. 분양가의 '폭탄 돌리기'의 책임을 따질 때가 아니다.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 책임은 나중에 물어도 된다. 천안함의 허술한 위기대응책이 룰렛게임의 분양시장에서 재연돼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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