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감혜림 기자) "소크라테스와 점심식사를 할 수 있으면 우리 회사가 가진 모든 기술을 내놓겠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인문학과 철학이 기업경영의 기반이 된다는 의미다.
인문학과 기업 경영의 만남이 화두다. 냉혹해 보이는 기업경영에 부드러운 문화예술 등 인문학 전반이 접목되고 있다. 서점가에는 ‘기업, 문화, 인문학’을 키워드로 한 책들이 경영·경제분야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한다. 이런 분위기는 대학에서 개설한 최고경영자과정(Advanced Management Program)이나 최고위과정(Advanced Program)에도 반영됐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2007년부터 운영 중인 '문화예술최고위과정(APCA)'도 그 중 하나다. 이 과정은 문화·예술·인문학 등을 주제로 실내강의·국내외답사·현장체험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문화마인드를 통한 창의적 아이디어 창출과 인간존중·고객지향·신뢰와 혁신의 기업문화 형성." 이 과정의 운영 목표 중 하나다. 때문에 프로그램도 실무적인 마케팅기법이나 시의성 있는 주제보다는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를 강조하는 강의가 대부분이다.
이번 학기에는 한양 성곽 체험, 가야금, 한복, 인도·베트남·중국·라틴아메리카 등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요즘은 이달 중순에 떠나는 티벳답사를 대비해 티벳의 문화와 역사에 관한 강의가 한창이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운영 중인 '문화예술최고위과정' 수업 장면. |
이 과정의 주임교수인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 이재학 교수에게 우문을 던졌다. "이런 목표는 실현되고 있습니까?" 이 교수는 주저 없이 답했다.
"수강생 중 기업 CEO들이 많이 하시는 말씀이 '전체를 조율하는 자리에서 보니 경영이란 결국 사람사이의 관계맺기다. 이를 위해 경영학적 지식 못지않게 사물을 보는 다른 시각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답은 문화 예술을 포괄하는 인문학을 통해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더불어 기업인들은 사람을 많이 만나잖아요. 누군가와 처음 만날 때 이야깃거리가 있고 공감대 형성이 수월하다는 점을 강의 효과로 꼽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화예술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강사와 수강생의 경계도 뚜렷하지 않은 편이다. 실제로 이번 학기에 '한국의 전통 술'에 대해 강연한 배중호 국순당 대표이사는 과거 이 과정의 수강생이었다.
이 교수는 이번 학기 인상 깊었던 수업으로 소설가 김훈씨 강의를 꼽았다. 박물관측에서는 수강생에게 강의 2주전에 김훈씨의 소설 '남한산성'을 배포하고 읽어오는 ‘숙제’를 냈다. 조선시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대의명분과 실리를 두고 반목하는 시대상황을 그린 책이다. 역사자체는 물론 리더십과 경영 기법 등 생각할 거리가 많아 기업 CEO에게 인기있는 책이다.
특이하게도 '한국어로 글쓰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정규 수업시간에는 소설에 관한 질문을 금했다. 대신 정규수업이 끝난 뒤 근처 막걸리집에서 김훈씨와 수강생들이 모이는 편안한 자리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소설에 대한 토론이 이뤄졌다. 소설 내용 자체에 대한 단순한 궁금증부터 CEO나 조직의 리더로서 느끼는 감상 등 다양한 주제가 쏟아졌다. 경영기법에 대한 직유가 아닌 소설을 통해 은유적으로 배우는 리더십 전반에 대한 만족감이 높았다는 후문이다.
금융위기, 스마트폰 등장 등 기존의 패러다임이 조정되는 시대. 문화예술 등 인문학을 통해 기업경영의 아이디어를 얻으려는 CEO들의 발걸음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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