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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장 주도권은 이내 유통업체로 넘어갔다. 제조업체와 소비자 사이에서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된 유통기업들은 소비자를 등에 업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판로를 찾아 헤매던 제조업체들에게 월마트와 같은 대형 유통업체의 선반은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시장은 소비자가 지배하게 됐다. 제조기업과 유통업체들이 외치고 있는 '고객이 왕'이라는 구호에는 어느 때보다 높아진 소비자의 위상이 반영돼 있다. 제조업체를 굴복시킨 세계 최대 유통기업 월마트의 리 스코트 전 최고경영자(CEO)는 "유통업체의 최우선 원칙은 '소비자를 짜증나게 하지 마라'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미국 최대 약국체인 월그린도 최근 새로운 '고객 중심 경영' 전략을 발표하고 소비자가 보다 쉽고 편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3000개 매장의 구조를 뜯어고쳤다.
소비자를 시장의 왕으로 등극하게 한 일등 공신은 인터넷이다. 기업들이 개인 블로그와 트위터 등에 올라오는 소비자들의 반응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기침체로 소비가 줄면서 소비자에 대한 기업들의 구애경쟁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하지만 리서치 전문업체 갤럽이 내는 경영저널 갤럽매니지먼트저널은 최근 '고객은 왕'이라는 데 대한 기업들의 맹신에 의문을 제기했다.
갤럽은 우선 고객들은 왕보다는 '파트너'로 대접받고 싶어한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은 고압적인 자세로 기업을 굴복시키기보다는 경영 활동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블로그나 트위터에 적극적으로 제품 사용후기나 개선할 점을 올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단순히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수다를 떨기보다는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IBM 글로벌비즈니스서비스의 소매부문 대표는 "요즘 소비자들은 협력을 통해 기업을 돕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며 "'협력'은 왕보다는 파트너에게 더 잘 어울리는 말"이라고 말했다.
갤럽은 또 소비자가 자신이 이용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정서적으로 강한 연대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라고 했다. 기업들은 이런 착각 속에 고객을 왕으로 떠받들며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지만 기업 실적 개선은 경쟁사보다 더 나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을 때라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제품과 서비스 개선에 앞장서는 것은 임직원인만큼 기업의 최우선 순위는 고객이 아니라 임직원이라는 얘기다.
갤럽은 고객을 돌보는 임직원을 보살피는 게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라며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이가 왕이 돼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지적했다. 또 기업은 누가 혹은 무엇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지 파악해 그 대상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도 정보기술(IT) 기업 HCL테크놀로지스의 비니트 나야르 CEO도 "고객을 더 행복하게 하고 생산성을 높여 기업의 성과를 높이는 핵심 인자는 기업 구성원"이라며 "임직원이 먼저고 고객은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갤럽은 고객이 왕이라면 그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는 원하는 것을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원하는 것을 알더라라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미국 자동차 메이커 포드의 설립자 헨리 포드는 "내가 고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소비자들에게 자동차보다는 더 빠른 말을 선사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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