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특구를 통해 외자를 도입하고 외화를 벌어들이며 취업만 확대하려는 것이 아니다. 특구는 기술의 창구요 관리의 창구이며, 지식의 창구요 대외무역의 창구이다.” 그로부터 특구를 통해 갖가지 개혁실험이 시작됐고 굳게 닫혔던 대문이 서서히 열렸다. 홍콩을 비롯한 해외 화교자본이 몰려 들기 시작했다. 외자기업과 합자기업이 속속 설립됐으며 주식제(股份制) 기업도 새롭게 선보였다.
중앙과 지방정부에 소속된 국영기업들이 대거 투자를 시작했다. 여기저기 도로망이 뚫리고 고층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효율성을 상징하는 ‘선전속도(深圳速度)’란 유행어가 전국을 휩쓸었다. 드디어 변화의 바람이 대륙 남쪽 변방으로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한발 앞서 농촌에서 불기 시작한 ‘가정생산도급제(包産到戶)’란 바람과 맞물려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8월26일로 특구 중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선전특구가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선전은 지난 30년간 중국 개혁 개방의 상징이며 견인차였다. 30년 전만해도 인구 5만의 작은 어촌마을에 불과했던 선전은 이제 인구 1,200만의 초일류 매머드 도시로 변모했다. 선전은 홍콩을 모델로 출발했으나 어느 면에서는 홍콩을 능가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토록 짧은 기간에 ‘천지개벽’을 이룬 원동력은 무엇일까? 어느덧 경쟁관계에 놓인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은 없을까? 한번쯤 함께 고민하는 것도 의미 있을 듯싶다.
우선, 정확한 전략과 정책의 수립이다. 계급투쟁만이 사회주의라고 여기며, 가난할수록 기강 잡힌 사회라고 믿던 시대에, 오직 경제발전만이 최고의 전략이라고 판단했던 덩샤오핑. 대내 ‘개혁’, 대외 ‘개방’ 정책을 과감하게 결단하고 추진했던 당시 중국 지도부는 참으로 용기 있고 위대했다.
둘째, 멀리 내다보는 안목(眼目)이다. 개혁 개방의 총설계사로 불리는 덩샤오핑은 작게는 10년 단위에서 크게는 50년, 100년을 단위로 발전 전략을 수립했다. 자연히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며, 효율성이 높을 수 밖에. 이에 비하면 불과 2, 3년 앞도 못 내다보는 우리의 정책결정 방식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셋째, 철저한 실험정신이다. 56개 민족에 13억 인구, 한반도(남북)의 44배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가진 중국. 이들은 결코 서둘지 않았으며, 작은 것부터 철저한 실험을 거쳐 시행착오를 줄여 가며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했다. 점(點)에서 선(線)으로, 선에서 면(面)으로 발전시키고, 다시 전국으로 역량을 확산시켜 가는 발전전략은 비록 형편이 다른 우리지만 배우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불필요한 논쟁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다. ‘자씨사씨(資氏社氏)’(*주) 논쟁이 일자 덩은 ‘부쟁론(不爭論)의 지혜’로 맞섰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비롯해 인천국제공항, 고속철도, 새만금사업에 이르기까지 역대 국책사업이 예외 없이 논쟁에 휘말렸던 우리와 비교된다. 건전한 토론을 비난할 사람은 없다. 토론을 통해 우리는 문제를 미리 진단하고 보완할 수 있다. 문제는 국익은 안중에 없고 지나치게 당리당략에 얽매인 논쟁이다. 자기주장만이 최고라는 오만한 대화자세도 문제다.
우리 역시 기적을 이룬 국민이다. 그러나 기적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말’만으로 기적을 이어갈 수도 없다. 이제 얼마 전까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특구의 기적’에서 우리는 겸손한 자세로 새로운 선진사회로의 도약을 준비할 때다. (필자 주: 자씨사씨 논쟁은 특구(정책)가 자본주의적인 것이냐, 사회주의적인 것이냐를 놓고 벌였던 대 논전을 이른다.) chinale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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