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러시아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수교 20주년을 맞은 양국의 협력 성과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양국이 변화한 국제 경제.외교 상황에 걸맞은 새로운 수준의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아 한국 국제교류재단과 러시아 국제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주최로 28일 IMEMO에서 열린 기념 세미나에 참석한 양국 전문가들은 "90년 수교 이후 지금까지 한.러 간 교역 규모가 10배 가까이 증가하는 등 양국의 경제 협력이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참석자들은 그러나 "장기적.전략적 파트너십을 위해서는 혁신기술과 첨단 산업에 기초한 더 높은 수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역액 10배나 증가"
이윤호 주러 한국대사는 이날 축사에서 "1992년 20억 달러에 불과하던 양국 교역액이 2008년에는 181억 달러에 이르렀다"며 "현재 러시아는 한국의 15번째 수출대상국이고 한국은 러시아의 12번째 수출 대상국으로 발전하여 상호 주요 교역 상대국이 됐다"고 양국의 경제협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이재영 유럽팀장은 향후 양국의 경제 협력 확대 방안에 대해 "현재 러시아 정부가 경제현대화 정책을 통해 중점적으로 육성하려는 에너지 효율화, 정보통신, 원자력에너지 등의 분야에 한국의 경험과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양국의 산업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의 대(對) 한국 투자가 한국의 대러 투자의 2.7% 수준에 머물고 있는 점을 지적, 한국에 대한 러시아의 투자를 적극 유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올렉 다비도프 러시아 외무부 아주1국 부국장도 "한.러 간에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양국이 혁신적 기술 잠재력에 기초한 더욱 효율적이고 새로운 수준의 경제교역관계로 이행해 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알렉산드르 페도로프스키 국제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아시아-태평양지역문제 섹터장은 남.북한과 러시아의 3각 협력 전망에 대해 "북한 내부 상황의 근본적 변화 없이는 대규모 협력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러, 북한의 핵야망 용납 않을 것"
아나톨리 토르쿠노프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MGIMO) 총장은 "한.러 양국은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서 군사적 갈등 요소를 제거하고, 북핵 위기를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데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다"며 "러시아는 북한의 핵야망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러시아는 북한의 핵무기비확산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체제로의 복귀,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지지하고 있다"면서 동북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시스템 구축 시도와 관련, "6자회담과 같은 다자안보시스템이 MD의 대안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르쿠노프 총장은 또 "천안함 사태가 남북한 간의 지속적 긴장과 군사적 충돌의 원인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며 "남북한 모두 점차 현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치적 출구를 찾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고재남 한국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러시아가 천안함 사태와 관련, 한국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지지하지 않은 것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바라는 자국의 이해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있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같은 외교안보연구원의 김덕주 교수는 "한.러 양국은 영토분쟁이나 민족 갈등의 요소가 없고, 상호보완적 경제관계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러시아가 한반도 통일의 방해세력이 아니라는 점 등에서 동북아 지역의 다른 국가들보다 협력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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