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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최승환 기자)
“사진을 찍기 위해 현장을 가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려운 이웃들이 정말 절실하게 나의 카메라를 원할 때, 그리고 진실을 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때 카메라를 들었다.”
노동시인으로 유명한 박노해의 말이다.
그의 두 번째 사진전 ‘나 거기에 그들처럼’이 오는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이번 사진전은 그가 12년간 아프리카·중동·아시아·중남미 등 소외지역 거주민들의 삶을 담은 사진 120점을 전시한다.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이번 사진전에 대한 생각을 들어 봤다.
자신을 ‘실패한 혁명가’라 소개한 그는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슬픔과 상처를 입은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됐고, 국경 너머 전쟁터와 분쟁 현장을 찾아다녔다”고 전했다.
사진전의 주제는 ‘나 거기에 그들처럼’. 작가 나름의 여러 의미를 담은 말 같았다.
그는 “중동지역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문구는 ‘Don't kill us , Don't help us’였다”면서 “우리가 그들보다 많이 배우고 경제적으로 선진화됐다고 해서 그들에게 강제로 무엇을 강요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생각해 보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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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녁에 종려나무를 심는 사람. Old Dongola, | ||
이번 전시회에 소개된 사진 120점은 그가 수동식 흑백 필름 카메라와 35mm 렌즈 하나만 들고, 중동 지역을 돌며 담아낸 130만장 중 심혈을 기울여 선별한 작품들이다. 다섯 점을 제외하면 모든 사진이 흑백이다.
그는 “색깔은 현실을 잘 표현 하지만, 너무 쉽게 조작한다”면서 “흑백은 사물 속의 영혼만을 드러내 보여준다. 색을 넘어서 그 영혼과 대화를 하며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컸다”라고 말했다.
매번 어려운 길, 또는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찾아가는 시인 박노해. 이번 사진전 역시 목숨을 걸고 전쟁 중인 중동 지역을 돌며 담아온 흔적들이었다. 대체 그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박노해는 “내 마음 속 깊은 슬픔과 치명적 상처가 본능적으로 더 큰 슬픔과 상처 난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만을 사랑하기 위해 이웃의 가난과 고통을 외면하는 자는 늘 폭풍우를 만나지만, 고통 받고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걸어가는 자는 늘 평온함이 함께 한다는 것.
이어 그는 “폐허더미에서 공포에 떠는 아이들과 함께 울어주고, 어깨를 안아주고, 총성이 멈추면 바람 빠진 공을 차며 부모 잃은 아이들과 놀아주기라도 해야겠다는 마음 뿐”이라고 덧붙였다.
시인 박노해는 이번 사진전에 앞서 10여 년간 몸소 체험한 중동 지역 모습을 담은 ‘라 광야’전을 열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당시 ‘라 광야’전은 중동 이슬람에 대한 깊은 성찰과 울림을 전해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번 사진전 수익금을 가난과 분쟁으로 고통 받는 중동 지역 난민들을 위해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박노해는 지난 16일 12년 만에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펴냈다. 이번 시집은 10여 년 동안 쓴 시 5000편 중 300편을 추려 담았다.
그는 “사람이 말할 때가 있고 침묵할 때가 있는 것 같다.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한 마디 말에 담긴 깊이”라며 “이제는 말할 때가 온 것 같다”고 12년 만에 시집을 펴낸 이유도 전했다.
kah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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