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들 만나면 부모님이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부터 묻고 싶어요.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도 많은데 제가 상봉자에 포함돼서 송구스럽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오는 30일부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와 금강산 호텔에서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60년 만에 동생 4명을 만나게 된 오성근(76)씨는 이산가족 상봉대상자 100명 중 최연소자다.
위로 누나와 형이 있어 8남매 중 셋째인 오씨는 북에 있는 동생 성석(71), 연숙(65.여), 성남(64), 연희(60.여)씨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냈다.
오씨는 20일 "아직 적십자사에서 공식적으로 연락받은 건 없었는데 인터뷰 요청을 받고 상봉자로 선정된 걸 알았다. 상대적으로 젊은 편이라 기대도 안 했는데…"라고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
나이가 많은 순서대로 가족과 상봉해야 한다는 생각에 60대 중반이 돼서야 적십자사에 상봉 신청을 한 오씨는 10년 만에 상봉자로 선정됐다.
오씨는 고향인 평양에서 부모님과 8남매가 오순도순 살았지만, 전쟁이 나면서 1950년 12월3일 고향을 잠시 떠나야 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17살이던 오씨는 부모와 함께 남으로 향하다 중간에 서로 행방을 놓쳐 혼자서 남하해야 했다. 형과 누나는 앞서 제각각 남쪽에 내려왔다.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집으로 갈 줄 알았기에 사진 한 장 챙기지 못했던 그는 "국군이 피난 갔다 보름만 있으면 집에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먹는 것만 들고 잠시 나오라고 했는데 그게 영영 이별이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피난 행렬에 묻혀서 남으로 오게 된 오씨는 1.4 후퇴 때 부산까지 내려갔다가 이후 서울에 자리를 잡았고 직업 군인의 길을 걷다가 기업에서 정년까지 일했다.
전날 적십자사에서 부모님 소식을 처음 들었다는 오씨는 "살아계셨으면 102세, 101세였을 부모님은 북에 사시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바로 밑의 남동생도 죽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늘나라로 간 바로 밑 동생, 그 아래 여동생 연숙이까지 얼굴이 떠오른다. 여기서도 10년이 지나면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인데 (동생들을) 60년 만에 만나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씨는 "누이와 같이 가고 싶은데 신청자만 갈 수 있는 걸로 안다. 편지를 주고받거나 연락을 계속 할 수는 없을 테고 하루빨리 상봉 신청을 하면 아무 때나 왔다갔다 만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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