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가계대출 관리는 불가피하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은 경영 자율성을 훼손하고, 서민의 자금줄을 옥죌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14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가계부채 증가율이 실물경제 성장속도보다 빠르지 않도록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의 장기.분할상환형.고정금리형 비중을 늘리도록 유도하고 은행별로 대출구조 개선계획을 세우도록 할 계획이다. 대출금리 변동폭을 일정 수준에서 제한하는 '금리 캡(Cap)' 상품도 제시했다.
국민소득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가계의 부실화 가능성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 조치다.
3분기 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725조204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7.32% 증가했다. 이는 올 3분기 경제성장률 4.4%(전년 동기대비)를 크게 웃돌고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인 7.5%와 맞먹는 수치다.
가처분소득 대비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2009년 말 기준 153%로 일본(135%)·미국(128%)·독일(98%) 등보다 높다.
일단 가계부채를 조정하기 위한 정부의 이같은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내년에 기준금리가 추가로 오를 수 있는 데다 부동산시장의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어 가계부채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정부가 총량 규제로 개별 은행의 영업에 직접 간섭하는 것은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금융감독상 검사 및 감독권을 통한 금융회사의 건전성 강화로도 대출 규제가 가능하다는 게 은행권의 시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예대율 등의 규제로 대출 증가속도를 충분히 잡을 수 있다"며 "가계대출 총량 규제는 시장 경제에서 은행의 경영 자율성을 흔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도 "금융권에서 대출이 과도하게 일어나지 않게 금융감독당국이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강화하는 등의 감독으로 충분히 규제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은행들은 또 대출 금리 상승 폭을 제한하는 금융상품에 대해서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개인 용도를 반영하지 않고 금리 인상을 제한하면 은행의 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지금도 일부 그런 상품이 있지만 소비자에게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금리가 낮다고 느껴지는 변동금리 대출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며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준다는 측면에서는 다양한 금융상품을 도입할 필요성은 있으나 금리가 많이 오르는 데 금리 상승 폭을 제한하면 은행의 수익성을 제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은행연합회와 시중은행들은 조만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정부 정책을 협의하고 개선책이나 대응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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