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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만한 책> 꽃이 열리고, 숲이 열리고, 사람이 열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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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2-2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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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훈 새 장편소설 '내 젊은 날의 숲'


(아주경제 오민나 기자) 대표작 '남한산성'과 함께‘밥벌이의 지겨움’ ‘바다의 기별’ ‘개’의 작가 김훈이 새 책 ‘내 젊은 날의 숲’을 발간했다.

강 건너 저편으로 가지 못하고 결국엔 더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언어로 보여주었던 ‘공무도하’ 이후 일 년 만이다.

이 책엔 특정범죄가중처벌상의 뇌물죄와 알선수재로 징역을 선고받은 주인공(나)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군청의 공무원으로 직장의 상사들에게 굽실거렸고, 밤중에도 수시로 불려나갔다. 교도수 수감 이후에도 교도소의 모든 규칙을 지키며 모범수가 된다.

내 젊은 날의 숲은 주인공이 다니던 디자인 회사를 그만두고, 민통선 안 국립 수목원의 전속 세밀화가로 채용돼, 일을 하러 수목원에 가던 도중 김민수 중위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풍경과 풍경, 풍경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더구나 문장으로 이들을 연결하는 쉽지 않은 일에 작가는 몰두했다. 작가가 지금까지 모색해 온 새로운 언어, 사람과 사람, 사람의 몸과 꽃과 나무와 숲, 자연이 서로 엉기어 드는 모습이 이번 작품에 잘 그려져 있다.

작가는 문장 안에서 풍경과 사람이 태어나고, 생장하고, 스러지고, 마침내 소통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문장 안에서 말로는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표현해 냈다.

“화가가 팔레트 위에서 없었던 색을 빚어내듯, 이미지와 사유가 서로 스며서 태어나는 새로운 언어를 도모했다. 몸의 호흡과 글의 리듬이 서로 엉기고, 외계의 사물이 내면의 언어에 실려서 빚어지는 새로운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삶의 일상성과 구체성을 추수하듯 챙기는 글을 쓰려 한다.”[‘풍경과 상처(2009)’ 작가의 말 中] 는 작가의 다짐은 이번 작품에서 충실히 구현된 셈이다.

김훈의 이전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각 인간의 희로애락을 그려냈다면, ‘내 젊은 날의 숲’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서로' 관계를 맺는다.

'풀을 들여다보면서,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식물들의 시간을 나는 느꼈다. 색깔들이 물안개로 피어나는 시간이었다. 숲이 저무는 저녁에 가끔씩 아버지가 생각났다. 어두워지는 시간에는 먼 것들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여름의 숲은 크고 깊게 숨쉬었다. 나무들의 들숨은 땅속의 먼 뿌리 끝까지 닿았고 날숨은 온 산맥에서 출렁거렸다. 뜨거운 습기에 흔들려서 산맥의 사면들은 살아 있는 짐승의 옆구리처럼 오르내렸고 나무들의 숨이 산의 숨에 포개졌다.'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묘사하는 언어로 그치지 않고, 한 줄의 문장 안에서 함께 태어나고 소통하는 것. 그래서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이 말해지는 현장, 그 현장이 김훈 작가가 그린 ‘숲’에 있다는 걸 독자는 책을 읽으며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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