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제일 처음 방문한 곳은 충칭시에서 180㎞ 떨어진 시 중부의 중현이다. 차창 밖으로는 귤나무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는데 겨울임에도 입안에 군침을 돌게하는 귤이 잔뜩 열려있었다. 안내원은 우리에게 중현은‘감귤의 도시’로 불리며 2008년부터 중국 감귤축제를 열고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중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중현과 삼국지연의의 깊은 인연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촉한(蜀漢)의 흥망성쇠를 수많은 영웅호걸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는데 책 속에 등장하는 엄안과 감녕이 바로 이곳 중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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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현 석보채 내부에 있는 감녕(우측)과 엄안(좌측)의 초상화. |
중현 지명의 기원에 대해 묻자 안내원은 자부심에 잔뜩 상기된 얼굴로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중현의 옛 이름은 중저우(忠州)에요. 엄안장군과 파만자(巴曼子)장군의 충절 덕분에 붙여진 이름이죠. 당(唐)태종이 두 사람의 충성심을 기리는 의미로 중저우라는 이름을 하사했죠.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2년 뒤에 중현으로 개명되었어요. 어찌되었든 이곳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충(忠)이란 글자를 얻은 지역이에요.”
天地有正氣, 雜然賦流形(천지유정기, 잡연부류형)
時窮節乃見, 一一垂丹靑(시궁절내견, 일일수단청)
爲嚴將軍頭, 爲嵇時中血(위엄장군두, 위혜시중혈)
爲張睢陽齒, 爲顔常山舌(위장휴양치, 위안상산설)
천지에 정기가 있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나타나니
시국이 어려워도 충절은 드러나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고
엄안의 머리로, 혜시중의 붉은 피도 되었다가
장순(張巡)의 피 묻은 구레나룻으로도 안고경(顔杲卿)의 올곧은 세치 혀로 나타나기도 했네
이는 남송(宋)시대 유명시인인 원톈상(文天祥)의 '정기가(正氣歌)'로 충신의 절개를 가장 잘 묘사한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작가는 장비가 지혜로 설득한 중현 출신 엄안장군의 지극한 충심을 언급한다.
우리 취재진이 찾은 충칭의 중현에는 또한 엄안과 장비의 각별한 인연을 설명해주는 유적이 있었다. 그 유적지는 바로 중현의 석보채(石寶寨, 스바오자이)였는데 안내원은 '장비 지혜로 엄안을 얻다’ 는 삼국지 고사를 그린 조각상을 가리키며 고향사람 '엄안'의 영웅적 기개에 대해 자랑을 늘어놨다.
엄안, 호는 희백(希伯), 동한 말 촉나라 사람으로 중셴현 우양구(烏楊區) 장쥔촌(將軍村)에서 태어났다. 삼국지연의 63화 ‘봉추의 머리 땅에 떨어지고, 장비가 지혜로 엄안을 얻다’에서 엄안의 충심이 잘 드러난다. 당시 엄안은 유장(劉璋)의 수하로 장저우(江州,지금의 충칭시 위중취(渝中區))의 사령관이었다.
건안(建安) 17년(212년)에 유비는 장비를 앞세워 유장이 다스리는 시촨(西川)을 공격하게 하였다.장비는 백성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잘 다독이며 단 며칠 만에 엄안이 수장으로 있던 파군(巴郡)에 도착했다.
"엄안은 당시 이미 나이가 지긋한 노장이었으나 여전히 기력이 넘치고 무거운 활과 도끼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용맹스런 장수였다" 고 안내원은 설명했다. 엄안은 장비가 성질이 급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는 급하게 공격해 올 것에 대비, 매복을 하고 장비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장비는 이를 역용하여 가짜 장비를 세워 매복이 있는 길을 지나가게 하고 오히려 적장 엄안을 사로잡았다.
싸움에서 승리한 장비는 파군성에 입성해 대청에 앉아 엄안을 끌고 오라고 명했다. 그러나 장비 앞으로 끌려온 엄안은 무릎도 꿇지 않고 버티고 서있었다. 장비는 화가 나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 몸이 오셨는데 항복은커녕 대체 뭐 하는 짓이냐,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이에 엄안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당당히 맞섰다. “목숨을 잃더라도 수치스럽게 항복하진 않겠다! 잔말 말고 차라리 죽여라!” 엄안의 패기서린 목소리를 들은 장비는 엄안의 용기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비는 직접 엄안의 결박을 풀어주고 그에게 옷을 걸쳐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내주며 예를 갖췄다. “장군이 영웅호걸이라는 소문을 들은 지 이미 오랩니다. 함부로 지껄인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장비의 겸손한 모습에 엄안도 감격해 항복했으니 이 대목이 ‘장비 지혜로 엄안을 얻다’라는 유명한 고사로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중현의 한 노인은 우리 취재진에게 충절로 살아남은 엄안이란 영웅을 존경한다는 뜻으로 마을이름에 ‘충(忠)’자를 넣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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