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부인과 외식을 한 뒤 밤하늘을 보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던 50대 남성은 본능적으로 한 여성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곳으로 내달렸다.
빌라 1층에서 황급히 튀어나온 한 젊은 남성이 칠흑 같은 어둠을 뒤로하고 줄행랑쳤지만 막다른 골목길이었다.
뒤를 쫓은 남성은 서울 송파경찰서 형사과 강력8팀장인 양광식(54) 경위.
강력사건 용의자와 숱한 격투를 벌였던 관록도 건장한 체격의 20대 남성을 혼자 당해내기엔 무리였다.
언덕길 위에서의 격렬한 주먹 다툼 끝에 양 경위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으나 곧바로 일어나 2차 추격을 시작했다.
다람쥐처럼 담을 타고 도망치는 범인과 벌인 숨 막히는 10분여간의 추격전.
동네 지리를 몰라 또 한 번 막다른 공터에 갇힌 범인은 두 번째 격투에선 양 팀장 앞에 무릎을 꿇었고, 출동한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에 넘겨졌다.
양 경위는 당시 갈비뼈를 다쳐 숨쉬기조차 힘들었지만, 며칠이 지나서야 병원에 입원했다. 강력팀뿐 아니라 주폭수사팀도 맡고 있어 할 일이 산적했기 때문이다.
양 경위는 3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범인이 흉기라도 들고 있으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들긴 했다”고 멋쩍게 웃으면서도 “그래도 경찰서 강력팀장이라는 사람이 물러설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강남경찰서는 윤모(28)씨를 강제추행 및 상해 혐의로 구속했다.
윤씨는 피해 여성 A씨의 뒤를 따라가 자택 현관문 앞에서 강제추행하다 A씨가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자 도망친 것으로 조사됐다.
양 경위는 이번 일로 서울경찰청이 매주 모범경찰관에게 표창하는 ‘굿 폴(Good Pol)’에 선정됐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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