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정자는 누구보다도 박 당선인의 의중을 꿰뚫고 있는 인사로 꼽혀온데다, 비례대표 초선의원 출신이지만 정치권에서 30년 가까이 활동해온만큼 정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는 박 당선인이 새누리당 비주류일 때는 곁을 지켰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에는 권력의 심장부에서 지근거리 보좌를 했다.
박 당선인이 당내 비주류로 혹독한 정치적 겨울을 보냈던 2008년∼2010년에는 ‘박근혜의 입’으로 불리며 비공식 대변인 역할을 했다.
전 언론매체를 혼자 상대하다보니 하루에도 많게는 200통이 넘는 전화를 받아야 했고, 그래서 휴대전화 배터리를 12개씩 준비해놓고 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전남 곡성 출신에 동국대를 나온 이 내정자는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다. 본인도 “나는 늘 비주류의 삶을 살아왔다”고 말해왔다.
그는 새누리당의 불모지인 호남 출마를 고집하는 바람에 고배도 수차례 마셨다. ‘영남정당ㆍ부자정당’이라는 비판을 받곤 하는 새누리당에서 몇 안되는 호남 출신이자 서민생활을 겪어본 정치인으로 꼽히고 있다.
박 당선인과의 첫 인연은 2004년 17대 총선 때였다.
광주에서 후보로 출마한 그에게 당시 당대표이던 박 당선인이 전화를 걸어 “어려운 곳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라고 격려했고 총선 후 오찬을 마련했다.
이 내정자는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의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해달라”고 열변을 토했다고 한다. 박 당선인은 가만히 듣다가 그 자리에서는 “어쩌면 그렇게 말씀을 잘하세요”라고만 말했지만 며칠 뒤 그를 당 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했다.
박 당선인이 2007년 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 그는 당시 이명박 후보측으로부터 선대위 고위직을, 김문수 경기지사측으로부터 경기도 정무부지사직을 제의받기도 했으나 모두 고사했다.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의원이 된 그는 새누리당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간 계파대립이 심화될 때 그는 박 당선인과 친박계를 대변하다시피 했다.
이 내정자는 18대 총선에서는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을 지내며 호남의 각종 숙원사업을 꼼꼼히 챙겨 ‘호남 예산지킴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의 두드러진 활약상은 박 당선인의 대선캠프 공보단장을 맡으면서부터다.
박 당선인 진영과 언론간 가교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야당의 각종 공세에 대한 대응을 주도하며 대야(對野) 공격의 선봉에 섰고, 박 당선인의 승리를 이끈 대표적인 공신으로 꼽히면서 정무팀장에 기용됐다.
부인 김민경씨와 1남1녀.
△전남 곡성(55)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수석부대변인 △국회 예결ㆍ문방ㆍ법사위원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새누리당 최고위원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공보단장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공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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