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런바오는 1961년 화시춘 당지부 서기를 맡은 후 우런바오는 당시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인민공사(중국식 집단 농장)에서 일해 번 돈을 한 집당 2000위안씩 내 공장을 짓자”고 설득했다. 마침내 나사못 공장을 차릴 수 있었고 마침 불기 시작한 공업화 바람 덕에 사업은 순풍이었다. 뒤 이어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지역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화시촌은 중국 정부가 농촌 소득증대를 위해 80년대에 시작한 향진(鄕鎭)기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철강, 섬유공장을 잇달아 지었다.
화시촌이 성립한지 50주년이 넘었으며 이들 기업은 ‘화시집단(그룹)’으로 성장했다. 회사 수는 무려 80여개 나 된다. 화시집단의 지난해 매출액은 500억위안(한화 약 9조원)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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