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계에서도 모호한 배임죄의 개념 때문에 대다수 기업경영자들이 형사재판에 내몰릴 위험에 노출되는 등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최근 배임죄 적용확대와 처벌강화를 추진해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지난 20일 법률신문이 개최한 신춘좌담회에서는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가 “기업 경영자의 행동이 언젠가는 배임죄로 처벌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에 일을 할 수가 없어 경제계에서는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 교수는 “2005~2008년 1심 기준으로 전체 형사 범죄 무죄율은 평균 1.2%지만, 형법상 배임죄 무죄율은 5.1%, 특경가법 배임의 무죄율은 11.6%로 10배 정도로 높다”며 “이는 배임죄 자체의 구성 요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배임죄는 구성요건이 모호해 기업 이사 등이 이익을 취한 경우나 회사에 손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손해 발생의 위험만 있어도 처벌될 수 있다. 일반 형사범에 비해 배임죄의 무죄율이 5배나 높은 것은 이처럼 검찰이 적극적으로 기소하기 위해 배임죄를 확대해석해 적용해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 중인 김승연 한화 회장이나 최태원 SK 회장의 경우에도 배임죄의 구성요건인 ‘피해’나 ‘이득’을 특정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다. 당사자측도 피해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뤄진 불가피한 경영판단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임죄의 피해나 이득의 규모를 명확하게 특정하기 힘든 측면이 있기 때문에 수사당국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클 수밖에 없다. 과거 한보철강의 회사채 399억원에 지급 보증을 선 대한보증보험 심모 대표이사의 경우 “기업 경영에는 원천적으로 위험이 내재해 경영자가 선의로 결정을 내렸더라도 그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는 수가 있다. 이런 경우까지 업무상 배임죄의 형사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이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독일과 일본을 제외하고 배임죄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독일과 일본도 국내처럼 배임죄 구성요건이 광범위하지 않다. 독일은 배임죄 주체를 ‘법률 또는 관청의 위임, 법률행위 혹은 신임관계’로 제한하고 있으나 국내서는 ‘타인의 사무처리자’로 규정해 그 범위가 넓다. 일본은 명백히 손해를 가할 목적이 있어야 배임죄가 성립하는 반면, 국내서는 손해를 가할 목적이 없어도 손해 발생의 위험만 있으면 배임죄가 성립한다.
미국은 배임죄 조항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배임 사항은 당사자간 민사적으로 해결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적용한다. 이는 회사의 이사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해 이해관계 없이 성실하게 회사의 이익에 합치한다는 믿음을 갖고서 경영에 관한 판단을 한 경우, 비록 그 판단이 부적절한 판단이어서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초래했더라도 그러한 판단을 한 이사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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