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기숙사 5층의 북한 아저씨

정치부 기자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중국 유학시절, 유학생 기숙사 5층에 북한 아저씨(?)가 살았다.

마른 체형에 노숙한 차림, 검은 피부의 그 아저씨에게는 '철호'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한국 학생들에겐 '북한 아저씨'로 통했다.

그 아저씨가 기자보다 7살가량 많은 '오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아저씨가 다음 학기 기숙사를 떠난 후였다.

그 아저씨는 포르투갈 사람과 한방을 썼다. 항상 두 명씩 짝지어 방을 같이 쓰며 서로를 감시하던 다른 북한 학생들과는 달랐다.

그 포르투갈인 친구가 기자의 룸메이트였던 체코인 친구와 절친했던 관계로 종종 그 방에 에스프레소를 마시러 가곤 했다.

20대 초반이었던 기자는 그 방에 들어설 때마다 심장이 두근 반 세근 반 했다. 물론 초대받아 갈 때마다 그 아저씨는 방에 없었다.

커피를 마시는 내내 기자의 시선은 그 아저씨의 책상과 침대에 집중돼 있었다.

책상 위 벽에는 열두 달을 나타내는 숫자들과 붉은 장미꽃이 그려진 한 장짜리 달력이 붙여져 있을 뿐, 어떠한 장신구나 사진도 없었다. 물론 그 달력엔 '위대한 수령'을 찬양하는 궁서체 글귀가 선명했다.

혹자는 그 방을 드나드는 기자에게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거 아니냐며 농담을 흘리기도 했다.

기자의 대답은 항상 "난 단지 에스프레소 맛이 좋았을 뿐이야"였다.

관심과 호기심이 이념의 잣대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느낀 순간이었다.

최근 북한의 대남 선전용 사이트 가입자 명단이 해킹으로 공개돼, 신상털기가 속출하면서 외교안보 담당 기자실도 어수선했다. 신상털기의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념을 떠나 북한 관련 정보가 취약한 한국 기자에게 있어 이들 사이트는 금역(禁域)일 수 없다.

최소한 북한 문제를 관할하는 정치인, 정보기관 관계자 등 불가피하게 북한의 동태에 안테나를 세워야 하는 사람들에게 정보 공간이 될 수도 있단 이야기다.

기자가 유학시절 단순한 호기심에 드나들던 그 '방'과는 또 다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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