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과 30일 국회에서 이상민 의원과 강은희 의원은 선행학습을 규제하는 법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선행학습을 규제하려는 사람들은 교육을 '교사가 학생에게 지식을 전수, 전달하는 과정'으로만 이해하는 듯하다.
이러한 시각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전 세계가 반세기 이전부터 반성하여 왔던 교육이론이다. 현대 교육에 있어서 학생은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다. 학습할 내용에 대해 일정 정도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학습에 참여하며 창의성을 바탕으로 토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교육과정이 선행의 기준이 될 수 있는지부터가 검토의 대상이다. 과거 10년을 간격으로 개정되던 교육과정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발전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여, 7차를 끝으로 수시개정의 길을 선택하였다. 국가가 정하는 교육과정은 인류의 문명과 국가사회의 질서를 개인이 수용할 수 있는 평균적인 선을 그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개개인은 학습과 인지의 능력이 동일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개인에 있어서도 특정 과목은 선행이 충분하기도 하고 다른 과목은 보완이 필요하기도 하다. 국가 구성원들 간의 합의에 의한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삼는다 하여도 이를 강제로 규제한다면, 특정 과목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여러 과목에서 보완이 필요한 학생은 역차별을 받게 되는 것이다.
법안은 개인의 선행학습은 규제하지 않는다는 예외조항을 두어 마치 학생들의 학습권은 인정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러나 이는 '권리'라는 단어의 뜻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하는 착각이다. '학습권'이라 함은 단순히 선행학습을 할 수 있는가를 넘어서 언제, 어디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학습을 하는가에 대한 학습자의 자유를 내포하는 권리이다.
학생 스스로가 학습서에 의존할 수도 있고, 부모나 형제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도 있으며, 인터넷을 이용하여 지식을 습득할 수도, 학원에서 교습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교육의 주체인 학부모와 학생이 선택할 권리이지, 어떠한 방식은 가하고 어떠한 방식은 불가하다고 법으로 막는 것은 명백한 권리 침해인 것이다.
법은 이루려는 목적이 사회 구성원간의 공동의 선을 추구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선행금지법은 예외적인 몇몇 학생에게만 기회를 제공할 뿐, 잠재적인 우수한 인재를 인정치 않는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앞서갈 여력이 있는 학생까지 억누르는 획일적 평등주의 개념으로는 공동의 선을 추구할 수 없다.
또한, 법이 만들어지게 되면 실제 사회에 적용 가능하여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그러나 선행금지법은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실효적이지 못함을 스스로 방증하고 있다. 영재학교나 커리큘럼의 구성에서 자율권을 갖고 있는 자사고·국제고 등과 고3 과정을 고2 때 끝내는 국내의 모든 일반계 고교를 예외로 하였다. 또한, 현실적으로 각 과목별로 선행이라는 판단의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에 대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교재의 구성 방식이나 수업의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만들어진 법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무시되어 사장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지켜질 것인가가 중요하다. 선행금지법은 규제할 수 없는 고액 개인과외로 학생들을 이동시킬 것이 명백하다. 실효적이지 못한 법을 빠져나갈 수많은 방법이 가능하므로 무의미한 법이 될 것이며, 이를 지키는 자만 바보가 되므로 음성적인 시장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선행학습은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지적 욕구이다. 따라서 이를 금지하는 것은 명백한 권리의 침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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