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황, <자화상自畵像>, 1782년(70세), 견본채색, 88.7×51.0㎝, 보물 제590-1호,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수염과 눈썹이 하얗구나.
머리에는 오사모(烏紗帽) 쓰고 몸엔 야복(野服) 걸쳤으니,
마음은 산림에 두고 이름은 관리의 명부에 있음을 이 차림으로 보였구나.
가슴엔 많은 책을 간직했고 붓은 기세가 오악(五嶽)을 흔들 정도였다.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만 나 스스로 재미를 삼는다.
나이는 일흔이요 호는 노죽(露竹)이다. 초상화는 스스로 그렸으며 찬(贊) 또한 스스로 지었다. 임인년(1782)에 쓰다.'
'수염과 눈썹'이 하얀 이 남자는 자신을 직접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담은 위 문장을 낙관처럼 찍었다.
나르시즘일까. 온갖 경력이 주름진 얼굴은 고희(70)의 풍모가 강렬하지만, 어쩐지 유머러스하다.
'평상복에 관모'를 쓴 모습이라니….' (61세에 한성부판윤(현재 서울시장)에 올라간후 일흔에 정 2품 이상 관료가 된 그는 '공무원' 신분에 꽤 만족한 듯하다.)
도포속에 가려진 작은 체구지만 꼿꼿한 선비의 기개를 보여주는 이 자화상은 '표암' 강세황(1713~1791)이다.
당시 초상화는 관복에 관모를 쓰는게 관례. 틀을 깬 파격미는 88.7cmx51.0cm 작은 화폭에도 위엄의 아우라가 강렬하다.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건 감각과 세련미를 갖춘 패션이다. 담백하면서도 은은한 하늘색 도포에 금니로 장식한 다홍색 (허리)띠는 스타일을 살리는 패션 포인트. 그의 진보한 예술관을 보는 듯하다.
1782년 나이 일흔에 그린 표암의 이 자화상은 보물(제 590-1호)로 지정되어있다. (진주강씨 백각공파 종친회가 소장해오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했다) 이 자화상은 윤두서의 자화상과 함께 '조선시대 자화상의 쌍두마차'로 꼽힌다.
단원 김홍도의 스승으로, '시서화(詩書畫)삼절(三絶)' 최고봉으로 꼽히는 그가 21세기 문화융성시대,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이 강세황의 탄신 300주년을 기념하여 '표암 강세황-시대를 앞서 간 예술혼' 특별전을 25일 개막한다.
강세황의 자화상을 시작으로 '표암유고'등 표암 집안에 대대로 전해 오는 유물들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에서 빌려온 '송도기행첩'을 비롯해 산수화, 초상화, 사군자화등 총 103점의 유물을 전시한다. 작품에는 강현, 강세황, 강이오 초상 등 보물 6점이 포함되어 있다.
삼성리움미술관과 소장가들을 설득해 빌려온 작품들로 이번 전시를 위해 이용근씨 등이 6점도 기증됐다.
김영나 관장은 "강세황이 살았던 조선 18세기는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며 문예가 활짝 꽃피었던 시기"라며 "그의 활발한 활동과 탁월한 안목은 임금에서부터 궁중의 화원, 재야의 선비에 이르기까지 신분과 지위를 넘나드는 네트워크 형성으로 개별적 교유를 넘어, 현재까지도 예술의 지향을 공유하는 물줄기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자존감 강했던 그의 그림과 글들을 통해 18세기 우리나라 예술의 역동을 이해할수 있게 연출했다.
1부 '문인화가의 표상'으로, 2부 '가문가 시대', 3부 '문인의 이상과 꿈', 4부 '여행과 사생',5부 '다양한 화목,청신한 감각', 6부 '당대 최고의 감식안'을 주제로 강세황의 대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강세황, <우금암도 부분.>, 지본수묵,25.4×267.34㎝,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소장 |
문인화가로서 그는 어디를 가든 보고 그리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전북 부안 현감으로 재임하는 아들 완을 찾아간 강세황은 부안 변산일대를 여행하며 스케치를 담아냈다.
가로 267.34cm 두루마리에 그린 '우금암도'(1770~1771)는 강세황이 쓴 '절벽이 비단을 쪼개놓은 것 같다'는 표현처럼 현장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실경산수'로 국내에 첫 공개되는 작품이다.
특히 이 그림은 당시 영조의 당부를 듣고 절필을 선언했던 기간중에 그린 작품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치지 못하는 그의 예술가적 기질을 볼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그림은 언제 건너간지도 모르게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소장품이 된 채 이번 전시를 위해 들어왔다.
이 전시를 1년동안 연구하고 기획한 민길홍 학예연구사는 "‘강세황은 예술에 대한 재능과 열정, 지적인 탐구를 바탕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일구었으며, 문예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안목으로 비평가로서 업적으로 '18세기 예원의 총수’로 불린다"며 "18세기 예술계의 역동을 이해하는 데 빠져서는 안 될 화가로 정조가 삼절三絶의 예술이라 칭송했던 그 예술의 정수를 느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기간중 매주 수요일 오후 6시30분~7시30분 큐레이터와의 대화시간이 열린다. 또 오는 7월 5일 오전 9시부터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 강세황 탄신 30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도 마련됐다. 전시는 8월 25일까지.관람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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