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잇따른 원전 중단으로 사상 최악의 전력난에 직면했음에 불구하고, 에너지 공기업들은 선장을 잃은채 정처없이 표류하는 모양새다. 새 정부의 국정철학에 맞춰 속도를 내야 할 에너지 공기업 기관장들의 인선 작업이 아직도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4일 산업부에 따르면 현재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서부발전, 한국남동발전 등의 수장 자리는 여전히 비어있으며, 주요 사업들의 추진 여부도 잠정 중단된 상태다.
한수원의 경우 최근 원전 비리로 사회적 뭇매를 받고 있음에 불구하고, 아직도 신임사장 인선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달 중순 사장 공모를 통해 선발된 15명 안팎의 후보자에 대한 면접 절차가 예정돼 있었지만, 거세지는 검찰 수사망과 원전 3기 가동 중단으로 인한 손실 부담까지 겹쳐 사장 재공모 일정은 기약이 없는 상태다.
한국지역난방공사도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 5월 말 정승일 전 사장이 사의를 표명하고 퇴직했으나 아직까지 후임이 정해지지 않고 있다. 사장 공모를 위한 임원추천위원회조차 꾸리지 못하고 있어 신임 사장 공모의 첫 단추도 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찌감치 사장 공모를 마감한 서부발전·남동발전 등 발전 자회사도 신임공모 절차가 무기한 연기됐다. 특히 김문덕 서부발전 사장의 경우 몇 달째 후임 인선이 이뤄지지 않아 아직도 회사로 출근하며 짐을 싸지 못하고 있다.
관가안팎에서는 이처럼 인선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관치인사 논란에 대한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실제 지난 6월 허증수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이 퇴임한 자리에 변종립 전 지식경제부 지역경제정책관이 취임하자 ‘낙하산 관료’라는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이에 두번에 걸쳐 사장선임 관련 주주총회를 연기했던 가스공사의 경우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정부의 눈치를 봤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애당초 가스공사 신임 사장 후보로 유력했던 김정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제치고, 장석효 전 사업본부장이라는 첫 내부출신 사장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산업부와 가스공사는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라는 표면적인 이유는 내세웠지만, 정부가 관료 출신 공공기관 인사에 제동을 걸었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늦어지는 공공기관장 인선에 해당 공공기관들의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장기화되는 수장 공백 상태가 조직의 기강해이를 비롯해 경쟁력 악화로 이어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장 하반기부터 국정감사를 비롯해 할 일이 산더미로 쌓여있는 점에서 조속한 인선작업이 마무리 되야 한다”며 “민간과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인력풀을 구성해 해당 분야의 적합한 전문가를 뽑는 것이 관건”이라고 제언했다.
오 교수는 “정부가 공공기관 인사에 지나치게 간섭하기보다는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개선해나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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