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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이정걸 "화마 겪은후 소멸과 생성 타임 슬라이스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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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10-2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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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걸,Time Slice-1313,· 2013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제 한 목숨 살아남은 것도 다행이지요."

서양화가 이정걸(52)은 지난 1986년 화마를 겪은후 소멸과 생성에 대해 관심을 갖기시작했다. 당시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실험작업을 하다가 집에 불이 나 모아둔 작품들이 모두 불에 탔다. 그때의 트라우마인지 이후에도 컨테이너에 작품이 쌓이면 몇몇 작품을 제외하곤 나머지 작품들을 폐기처분할 정도로 집착이 사라졌다.

이전 낡은 널빤지나 오래된 못, 낙엽 등을 그리며 하이퍼리얼리즘에 빠져있던 그는 2007년부터 구상의 틀을 벗기 시작했다.

"소멸의 순간 생명의 새 불씨를 보게 됐다는 작가에게 '소멸과 생성'은 화두가 됐다. 200여년간 곰삭은 생각은 시간의 층이 켜켜이 쌓인 '타임 슬라이스(Time Slice)’로 탄생했다. 'Time Slice’는 시간의 층이나 얇은 조각’이란 뜻이다.

2008년부터 새 시리즈로 발표한 '타임 슬라이스'는 오래된 시간의 주름을 잡아끈 무수한 색의 하모니가 빛난다. 천에 그린듯, 아니면 인쇄용 망점을 그린 듯한 표현기법이 독특하다.

'어떻게 그린것일까?'가 먼저 다가오는 작품은 전통적인 서양화 붓질과 컴퓨터 그래픽을 결합해 환상적이고 입체적이다.

낡고 버려져 눈길조차 못받던 사물들을 조합하며 과학자 못지않게 온갖 실험을 반복하며 시행착오를 이겨낸 결과다.

농가의 버려진 천막을 가져와 이에 여러 겹 물감을 입히며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기도 하고, 골판지 시트지 롤러 주사기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진득한 물감 덩어리를 칠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화의 채색화처럼 묽고 엷은 층의 물감을 여러 번 반복해서 원하는 결정적인 색을 얻어낸다.
이정걸‘Time Slice-1316‘. 2013

세월의 흔적과 시간의 층위가 켜켜이 쌓여 실재와 허상이 합쳐진 작품에는 삼라만상이 지닌 소멸과 생성의 비밀이 담겼다.

"삼라만상이 존재하기 시작하는 순간 소멸의 길을 지나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그 자리에선 어김없이 또 다른 생명체가 태어나지요. 무수히 반복되는 시간의 연속이 곧 세상의 존재감이며, 그렇게 반복되는 ‘소멸과 생성의 비밀’을 저만의 방식으로 이번 작업에 녹였습니다."

마티에르의 질감으로 두텁게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의외로 편편하고 얇은 작품의 면면은 작품에 몰두한 작가의 내공을 엿볼수 있다.

작가는 경희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나와 양평에 둥지를 트고 전업작가로 활동 중이다.

“내게 작가란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십자가'"라는 작가는 "적지 않은 고통이 따르지만 작업에 매진하는 순간순간 가장 큰 행복하다"고 했다.

작가는 23일부터 29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소멸과 생명’을 주제로 5회 개인전을 연다. 대표작인 ‘Time Slice’시리즈를 비롯해 매혹적인 노란색 추상화, 화면 속에서 인간 형상이 부드럽게 어른거리는 작품 등 30여점을 전시한다.(02)736-1020.
이정걸 ‘Time Slice-13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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