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로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이는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연금을 통해 민간기업 경영에 관여하는 '연금 사회주의'의 첫 사례이다. 또한 사회적 물의를 빚은 한국의 재벌 총수가 경영권을 상실한 첫 케이스로, 타 재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과 시민단체 그리고 행동주의 펀드가 참여한 이번 조 회장 사내이사 연임 반대는 땅콩 회항, 물컵 갑질 등 사회적 물의를 빚은 조씨 패밀리에 대한 국민의 분노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이 5% 이상 투자한 상장기업에 투자자산 관리 의무를 다하라는 이른바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도입했다. 다시 말하면, 갑질 등 사회적 지탄을 받는 재벌 총수 하나쯤 회장 자리에서 날려버린다는 발상이다. 국민연금은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있는 5% 이상 지분 소유 종목이 297개사나 된다. 이에 따라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주주이익 보호차원에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거대한 국민연금의 운용자금은 기업과 국민이 돈을 반반씩 납입해서 만들어진다. 국민연금이 정치권의 입김에 따라 의결권을 결정하고 기업경영을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볼 때는 너무도 두려운 일이다. 갈수록 국내외 경제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기업인의 의욕은 더욱 꺾일 수 있다. 국민연금의 정치적 독립성은 우리에게 큰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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