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전자발찌 연쇄 살인' 사건 피의자 강모씨(56)가 송파구청과 주민센터를 수시로 찾아 '전자발찌 탓에 일을 못한다'며 후원 물품을 요구하는 등 갑질을 벌인 정황이 드러났다. 성범죄 전과자 재범행을 막고 시민 안전을 위한 전자발찌가 오히려 연쇄 살인범의 갑질 수단으로 전락했다.
31일 송파구청 등에 따르면 강씨는 출소한 바로 다음 날인 5월 7일 서울 송파구 거여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다. 이후 3개월 동안 구청 등으로부터 약 700만원을 지원받았다. 기초수급생활자에게 지급하는 명목으로 340만원, 후원 기관 후원금 350만원이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면 심사에 몇 달이 걸리는 경우가 흔하지만, 강씨의 경우 담당 공무원에게 집요하게 요청해 처리 기간을 통상보다 단축하는 데 성공했다.
구청 관계자는 "그럼에도 강씨는 택배 일을 하는데 전자발찌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며 "(국가가) 일도 못하게 하면서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이 너무 적다고 수시로 불만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후원 물품이 더 없느냐, 왜 더 안주느냐고 구청과 주민센터에 주 2회가량 찾아와 항의했다"며 "상습적이고 악의적으로 민원을 계속 해서 직원들이 애를 많이 먹었다"고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강씨는 LH가 기존 주택에 전세를 얻어 저소득층에 장기간 재임대하는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하는 데 필요한 보증금 200만원도 지원받았다.
전자발찌를 활용한 전과자들의 갑질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0년 한 전과자는 착용했던 전자발찌에 연동된 휴대연락기를 밥값 대신 맡기기도 했다. 전자발찌 연동 휴대연락기는 황당하게도 긴급 출동한 법무부 직원이 밥값을 물고서야 되찾을 수 있었다. 전과자가 공짜 밥을 먹은 것도 모자라, 법무부 직원을 현장에 불러 밥값까지 계산하게 한 셈이다. 결국 전과자는 출소 10여일 만에 재수감됐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국가 지원금도 받았고, 갱생보호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화장품 관련 업종 일자리도 구했다"며 "경제적으로도 자립적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국가로부터 여러 가지 서비스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범죄자 인권 얘기할 때마다 제가 언제나 반론으로 제기하고 싶은 게, 지금 사망하신 두 분 여성의 인권은 도대체 왜 보호를 못해주는 건지 해명을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법무부, 피해자 속출하는데 전자발찌 '작고 가볍게' 개량
전자발찌에 달린 발신기는 가로 5㎝, 세로 5㎝, 두께 2㎝. 바짓단이 올라가면 양말 속 전자발찌도 눈에 띌 수 있다. 법무부는 6월부터 전자발찌 소형·경량화 작업을 검토 중이다. 범죄자 교화와 재사회화가 주된 이유이지만, 전자발찌 착용자의 편의도 고려됐다.
법무부 통계를 보면 올해 전자감독 대상자는 7월까지 8166명. 10년 전인 2011년 1561명에 비해 5배 넘게 급증했다. 지난해 '전자장치 부착법' 개정으로 모든 가석방자에 대해서도 전자발찌 등 전자장치 부착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전자발찌 착용자의 증가 추세를 고려할 때 전자발찌 소형·경량화를 통한 범죄자 교화와 재사회화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전자발찌 착용자의 사회적 낙인 효과를 줄이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법무부 전자발찌 소형·경량화 계획은 역풍을 맞을 전망이다. 전자발찌 착용자에 대한 인권 옹호 정책이 '송파 전자발찌 연쇄 살인 사건'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자발찌는 모니터링 제도일 뿐 범죄를 억제하거나 재범을 완전하게 막아줄 수 없다"며 "현재 범죄자들은 형기를 마치면 무조건 사회로 나온다. 전자발찌 하나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편의성이 지나치게 고려될 경우 제 2, 제 3의 강씨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미국식 '하프웨이 하우스'(Halfway House)처럼 낮에는 일상 생활을 하도록 하고 저녁에는 일정 시설이나 지역에 모여 지내는 중간지대가 필요하다"며 "그게 안 된다면 출소 6개월 전부터 치료나 교화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법무부는 6차례에 걸쳐 전자발찌 재질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강 씨가 전자발찌를 끊는 것을 막지 못했다. 전자발찌 훼손 건수는 2018년 23명, 2019년 21명, 2020년 13명, 올해도 7월까지 이미 11명이 발생하는 등 매년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전날 "전자발찌의 훼손을 막기 위해 현재보다 더 견고한 재질로 전자발찌를 제작하기로 했다"며 기존 대책을 되풀이해 비난을 자초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