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해군에서 발생한 성폭력 피해자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군 성범죄를 처음부터 민간 수사기관과 법원이 수사·재판하도록 하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가까스로 통과했다.
그러나 군 사법체계 개혁에 첫발을 뗐다는 일부 평가에도, 벌써부터 법조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반쪽짜리'라며 잇달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야는 지난달 31일 본회의를 열고 △성범죄 △군 사망사건 관련 범죄 △입대 전 저지른 범죄에 대해 1심부터 일반 법원이 관할토록하는 내용이 담긴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재적 227명 중 찬성 135명, 반대 63명, 기권 29명으로 의결했다. 개정안은 내년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평시와 전시 모두 1심은 보통군사법원이, 2심은 고등군사법원이 각각 관할한다. 최종심만 대법원이 맡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은 군 성범죄 사건에 한해 수사와 기소, 재판을 모두 민간 검찰과 법원으로 넘겼다. 군인이 되기 전에 저지른 범죄와 군인 사망 사건도 전부 민간으로 이관된다. 군단급 부대에 주로 설치된 30개 보통군사법원은 1심만 담당하는 5개 군사법원으로 재편된다. 군사법원을 국방부 장관 밑에 둬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군검사에 대해 지휘권 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개정안에는 일선 부대 지휘관에게 형 감경권을 부여했던 '관할관 확인조치권' 제도와 법조인이 아닌 일반 장교가 재판관을 맡는 '심판관'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관할관은 사건을 특정해 변호사 자격이 없는 일반 장교를 심판관이란 이름으로 판사석에 배석할 수 있다. 군사법체계상에만 있는 특수한 제도다. 통상적으로 고등군사법원 관할관은 국방부 장관, 보통군사법원은 군단장이 맡았다. 특히 관할관은 재판부가 결정한 형량을 3분의 1 미만 범위 내에서 재량으로 감경할 수 있는 확인조치권을 갖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법조계 "한계 분명" 잇단 비판
하지만 군당국 반대로 개정안에 '평시 군사법원 폐지'까지는 담지 못하자 시민사회단체는 '반쪽짜리 개혁'이라며 평가 절하했다. 이미 시민사회단체 출신 국방부 민·관·군 합동위원들은 '평시 군사법원 폐지' 내용이 빠진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심사가 진행되자 군 수뇌부를 비판하며 줄줄이 사퇴했다. 사퇴 위원은 지난달 19일 4명, 22일 2명에 이어 25일 6명 총 12명에 달한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국방부는 (평시 군사법원 폐지를) 국회에 입법 논의 과정에서 민·관·군 합동위원회 권고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권고에 명시된 실효적 권한들이 대부분 빠진 법안에 편승하는 기만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방부는 위원회를 형식적으로 운영하며 위원들을 들러리로 전락시켰고 개혁을 방해했다"며 "반쪽짜리 (개정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계속 내고, 구타·가혹행위, 음주운전 등 더 많은 군범죄 행위가 앞으로 개정안에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법조계 역시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공정성과 독립성을 의심 받는 군사법원을 수술대에 올린 것만으로도 개혁으로 평가받을 수 있겠지만, 개혁 내용이 군 성범죄 사건에 한정되다 보니 마치 군사법원이 판결을 잘못 내려 군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는 이유다.
최영기 법무법인 승전 대표변호사는 "군 성범죄 사건은 신속한 가·피해자 분리, 2차 가해 상황에 처해질 가능성이 많은 군 특수성 등 근원적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에 대한 논의 없이 민간법원에서 수사와 재판을 한다고 해서 군대 내 성범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4년 집단구타 사망 사건의 피해자인 윤승주 일병의 모친 역시 "결국 성폭력이나 군사망사건, 입대 전 범죄만 민간법원으로 넘겼다"며 "성폭력 피해자가 사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밖의 사건들은 공정하게 처리해왔기 때문에 군사법원에 남겨둔 것이냐"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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